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4 23:46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외부기고

[금요수필]인생은 모래시계

image
윤철

나는 대중탕 가는 일을 즐긴다. 집집이 대부분 목욕 시설을 갖추고 사는 시대에도 대중탕의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아마 대중탕이 단순히 몸을 씻기 위한 곳만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들어가는 순간, 빈부의 격차가 사라지는 평등한 공간이 대중탕이다. 세상의 거추장스러움을 떨치듯 옷을 모두 벗어버린 탕 안에서는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서로 벗은 몸을 보고, 보여도 아무렇지 않은 곳, 더구나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앉아있으면 누가 누구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따끈한 물의 온도에 체온이 올라가며 몸이 풀린다. 체온이 1도 올라가면, 그만큼 면역력이 좋아진다니 목욕은 이래저래 좋은 일이다.

목욕탕 안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사우나실이다. 걸친 것 하나 없는 알몸으로 육수 뽑기 경쟁을 하면서도 옆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간혹 벌렁 누워있거나 스트레칭한답시고 나대는 사람만 없다면 이보다 편안한 곳이 또 있을까? 나는 사우나를 사색의 명소라고 부른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숙고할 일이 있으면 으레 사우나를 찾는다. 스마트폰이나 TV도 없고 수다를 떨 친구도 없다, 그저 멍때리며 생각에 깊이 빠질 수 있어서 좋다.

우리 동네 목욕탕의 사우나실엔 모래시계가 하나 놓여있다. 모래시계는 작은 유리공(球) 두 개가 좁고 잘록한 통로를 맞대고 있는 모양이다. 한쪽 유리공에 가득 채워진 모래가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는 양으로 시간을 잰다. 다양한 용도에 따라 시간 간격을 조정하여 만든 모래시계는 내가 사우나 안에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흐른 시간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시간은 처음과 끝이 서로 물고 이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날로그시계는 시간과 분, 초를 가리키는 바늘이 문자판 위를 쉼 없이 돌고 돌며 늘 현재 시각만을 알려준다. 디지털시계는 바늘 대신 0에서 9까지의 문자가 무한 반복되는 것일 뿐 현재의 시각만을 나타내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한없이 돌고 도는 시계의 속성은 이 순간이 끝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언젠가는 끝이 있는 인생임을 알면서도,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도 시계의 속성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인생을 시계에 비유하자면 모래시계와 같다.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저마다 모래시계를 하나씩 받는 것이다. 인생의 시간은 모래시계에 담긴 모래만큼 정해져 있으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래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끝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동네 목욕탕 사우나실의 모래시계는 5분용인데, 내 인생의 모래시계는 몇 시간용이나 될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613,200시간이니 그보다는 큰 용량일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떨어진 모래는 보이는데 남아있는 모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다. 또 ​사우나실의 모래시계는 뒤집으면 새로 시작하지만, 인생 모래시계는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일회용이란 점이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 한 알이 내리는 순간, 천년만년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며 살았던 우리 인생도 눈을 감고 숨이 멎는다. 말기 암 환자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듯 하늘이 내 인생 시계의 남은 모래가 얼마인지를 알려준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게 될까?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남은 시간을 일일이 알려준다면 이 세상은 어떠한 변화가 올까?

사우나실에 앉아 내 인생 시계의 남은 모래가 얼마인지 알 수 없게 만든 하늘의 섭리를 숙고해 본다.

△윤철 수필가는 진안군 부군수 등 36년의 공무원 생활을 하였으며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했다.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전북수필문학회 명예회장, 전북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생 #모래시계 #윤철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