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길목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어느새 아침부터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마음 한 곁에는 첫눈의 반가움으로 어디론가 마냥 떠나고 싶은 하루이다.
얼마 전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통원 치료를 하던 중에 문득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항상 바쁜 일정으로 인해 숨 가쁘게 살아온 삶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브레이크가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늘 여유 없이 바쁘게 그 무엇이 앞만 보고 달리게 했을까?
그건 끊임없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야만 했던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그동안은 끝없는 열정 하나로 정상을 향해 살아왔다.
학위를 받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논문을 쓰고 새로운 학문과 목표에 몰두하며 살아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 건지? 회의감으로 시간과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주말인 오늘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여서 온천 있는 곳을 향해 훌쩍 가족과 함께 떠났다.
드라이브 삼아 가는 산자락에는 울긋불긋했던 단풍들이 마지막 가을 인사를 하느라. 바람결 가지 끝에 매달리어 퇴색된 빛깔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남원과 곡성을 지나 이십여 년 전에 가보던 여행길은 마냥 반갑고 설레었다.
그곳은 온천지로 매우 유명한 곳이어서 수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로비에 있는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하고 리조트인 숙소에 짐을 풀기 위해 먼저 우리는 올라갔다.
로비에 내려오니 경상도 사투리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관광버스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좋은 여행지에 온것 같아 우리도 마냥 즐거웠다.
그때, 어디선가 “교수님”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몇 년 전에 졸업한 제자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매우 사랑하고 아꼈던 제자였다. 그 친구 고향은 대구라고 기억된다. 늘 잊지 않고 스승의 날이면 인사를 하려고 찾아온 제자였기에 더욱 기뻤다.
제자도 가족과 함께 왔다고 하여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참으로 인연이란, 묘하기도 하다.
그 제자는 가정의 어려움으로 학교를 중퇴해야만 될 사정이었으나 그녀를 설득하여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여 4년의 대학을 잘 마치고 대구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한 인연으로 그 제자와는 자주 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수필가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 생각이 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선생님은 인연의 깊은 뜻을 심오하게 글로 표현하는 걸 보니 역시 대단한 수필가라는 생각이 든다.
제자는 다음에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족들과 인사를 뒤로하고 헤어졌다.
참으로 그 제자가 잘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다. 그의 미래를 위해 내가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도 좋은 인연의 끈을 맺고 싶다.
일 층에 내려와 창가에 앉아 있노라니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축복처럼 내리는 첫눈이다. 올해 처음 보는 눈을 여행지에서 보게 되니 마음이 포근했다. 열정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이었지만, 그 제자를 만나게 된 오늘 생각해 보니 얼마나 보람되고 뜻깊은 길을 걸어왔는지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
나 자신을 어루만질 수 있는 감성적인 여유의 시간이 되는 것 같아 너무도 좋은 여행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게 있었지만, 맛을 보지 않아도 정신적인 포만감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정도의 길을 걸어온 내 삶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눈이 내리는 날에 ‘인생은 아름다워라!!’ 영화라도 한편 보아야겠다.
소박하고 소소한 행복을 위해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이종순 수필가는 월간 종합문예지<문예사조> 신인상 부문에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는 현재 '전주 아이가 크는 숲 예솔' 대표 및 원장으로 근무하며 우석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겸임교수와 호원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