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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누구인가] “누구나 절망하지 않는 세상 꿈꾸던 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참혹한 유년기 거쳐 행동하는 변호사로 성장
성남시장, 경기지사, 민주당 대표 거치면서 행정과 정치 섭렵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는 대통령 자임 ‘기본사회 추구’
사법리스크와 각종 견제에도 초거대 여당 만들면서 국정동력

전문=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그의 인생역정과 철학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삶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시작해 확고한 주류로 자리매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 대통령 본인이 밝혔듯 참혹한 유년기는 그의 정치의 근원이 된 ‘기본사회’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으로 귀결됐다. 

그는 경기지사와 거대 야당을 완전히 장악한 민주당 대표 시절을 거치며 우리 정치사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정부와 검찰과의 대립, 여당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이 대통령에 얽힌 수 많은 재판도 걸림돌이었다.  삶의 전체가 마치 전쟁과도 같았던 셈이다.  이재명 새 대통령이 그려나갈 ‘진짜 대한민국’을 그의 삶을 통해서 들여다 봤다.

잔인하고 차가웠던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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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경북 안동시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공식적으로 1964년 12월 22일생이지만, 1963년 음력 10월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그의 실제 생년월일이 추정으로 남은 이유는 어린 시절 곤궁한 형편에 그의 어머니가 정확한 출생 날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6년 안동 삼계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으로 이주했다. 12세에 동마고무라는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중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프레스에 왼쪽 팔뚝을 찍혔다. 그는 이 사고로 6급 지체 장애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꿈은 교사였다. 이유는 너무 많이 맞아서 자신도 선생님이 돼서 애들을 때려보겠다는 복수 감정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는 만큼 그에게 유년시절은 참혹했다.

 

독학으로 쌓아올린 성장의 발판 

이재명 대통령은 소년공 시절 대리직급이었던 작업반장이 고졸인 것을 알고 '나도 고졸이 되면 작업반장이 될 수 있나보다' 싶은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부친은 단 하루라도 공장이 쉬는 날이면 시장 청소를 시키거나, 전기세가 아깝다고 불을 끄게 해, 공부를 방해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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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사법연수원 졸업식에서 모친인 고(故) 구호명 여사와 기념 촬영을 하는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연합뉴스

어렵게 공부한 독학으로 고입(1978년)과 대입(1980년) 검정고시 빠르게 합격해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노동법·기본권 학회에서 활동했다. 1989년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고, 1994년 성남시민모임(성남참여연대) 창립에 깊이 관여하면서 행동하는 법률가로 이름을 날렸다.

 

성남에서 시작한 시민운동…'대동세상의 길' 

변호사 시절 대표적인 활동은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제기,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 제기, 그리고 그해부터 시작된 성남 시립병원 설치 운동이었다. 그는 당시 10만 명 서명운동을 벌인 뒤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발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성남시의회는 2004년 3월 25일 개회 47초 만에 이를 부결시켰고, 이는 그가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하기로 한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약자를 보듬어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억강부약의 대동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이때 구체화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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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해 51.2%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55.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서울의 강남권에도 비견되는 보수정당 강세지역인 분당구에서도 승리하면서 좌우 가리지 않는 유능한 행정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성남시장 재직 당시 공약 이행률은 무려 94.1%로 이때부터 이 당선인은 주류는 아니었으나 민주당 진영의 잠룡으로 본격 대두됐다. 2017년 민주당 19대 대선 경선에 참여해 문재인·안희정 후보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체급을 올려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신천지 시설 직접 방문 및 폐쇄, 경기도 계곡 불법 영업 정비 사업, 청년배당 지급을 감행하면서 추진력 있는 ‘행정가’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확고한 민주당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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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수락연설하는 이재명 대선 후보 /연합뉴스

경기지사 시절 90%대의 높은 공약 이행률 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2021년 민주당 20대 대선 경선에 나서 후보로 선출됐다. 이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그는 당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압도적으로 제치면서 진보진영의 주류를 완전히 바꿔놨다.

그는 결과적으로 윤석열 후보에 0.73%포인트 차이로 패하며 고배를 마셨으나 당내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고, 대선 패배 두 달 만인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가 대표에 오른 후에는 민주당은 일극체제로 변화했다.

그러나 사법리스크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반복되는 재판과 구속을 위한 검찰과 정부의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나 그의 피선거권을 압박하는 주 요인이었다.

변화의 계기는 12·3 비상계엄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성급한 판단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 된 셈이다.

정치적인 후광이나 계파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주류 정치인에서 대통령이 되면서 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대립은 없지만,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우뚝 서는 나라가 그에게 놓인 과제다.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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