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 시인 49재 맞춰 추모의 밤 개최
유가족 비롯해 문우와 제자 등 120명 참석
시인의 따뜻한 생애와 문학적 발자취 되새겨
“한국 시단에서 정양 시가 차지하는 역할이 큽니다. 자기를 핍박의 대상을 허용하고, 농경언어를 활용해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한국 시단에 정양의 시는 기억될 겁니다. 정양 시인이 생전에 힘을 쏟아 시작(詩作)한 작품을 읽고 기억하는 한, 시인도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전북작가회의 사무실. 정양(1942~2025) 시인의 오랜 문우인 윤흥길 소설가의 추모사에 일순간 숙연해졌다. 정양 시인의 49재에 맞춰 열린 ‘정양 시인 추모의 밤’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윤흥길 소설가, 김용택·김사인·안도현 시인 등 문화예술계 지인과 그가 가르쳤던 신흥고, 우석대 제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120여 명의 인파가 몰려 일부는 사무실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기도 했다. 추모의 밤 참석자들의 발언이 길어지면서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 행사는 9시를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윤흥길 소설가는 1970년대 초 정양 시인의 가족사를 듣고 완성한 소설 ‘장마’ 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윤흥길 작가는 “새벽에 소설을 탈고하고 통행금지 시간 풀리자마자 건네줬다”며 “(소설을 건넨 뒤) 이튿날 만났는데, 소설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없고 그저 ‘짜식’이라고 말하더라. 속으로 ‘내 작품이 성공했구나’ 싶었다”고 했다.
정양 시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신흥고등학교 3학년 2반 제자들의 감사 인사도 이어졌다. 제자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이은홍 만화가는 학생들에게 친구처럼 형처럼 대해준 따뜻한 분이라고 회상했다. 이은홍 만화가는 “오랜 시간 선생님과 만남을 이어가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던 것 같다”며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동철 시인이 정양 시인을 생각하며 쓴 헌시 ‘보리누름’ 낭송에 이어 박남준 시인은 은희의 ‘고향생각’을 직접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했다. 김헌수 시인은 대표작 <내 살던 뒤안에>를 낭송했고, 김수예 시인은 <가을밤>을 낭송하며 시인의 작품세계를 함께 음미했다.
이번 추모의 밤을 주최한 전북작가회의 유강희 회장은 “정양 시인은 문학적 스승뿐 아니라 어두운 한 시대를 이끈 어른이셨다”며 “49재를 맞아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곳에서 부디 평안하시길 빈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병초 시인은 “아직은 선생님의 죽음이 객관화가 안된다”며 “추모의 밤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안도현 시인과 강형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그리고 유족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한다”고 했다.
1942년 전북 김제 신풍리 출생인 정양 시인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천정을 보며’가 당선되며 등단했고, 1977년에는 윤동주에 관한 평론 ‘동심의 신화’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원광고와 신흥고 우석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전북작가회의 창설에 주도한 시인은 2016년 안도현·김용택 시인 등과 함께 지역 출판사 ‘모악’을 창립해 독립 문학 출판 생태계 조성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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