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안성덕 시인의 '풍경'] 삼화사진관

image
안성덕 作

 

서울말이 참 근사했지요. 소풍이나 체육대회 때면 카메라를 둘씩이나 메고 나타나는 그, 유난히 말수가 적고 얼굴이 희다는 것 말고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요, 이미 그를 맴도는 머리통 굵은 친구 입에서 나왔겠지요. 실패한 사랑 때문이라는, 폐병쟁이라는 풍문만 돌았습니다. 국민학교 옆 터줏대감 소라사진관 사장님과는 딴판, 철학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야!”,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긴 소매 미색 와이셔츠를 입던 알쏭달쏭한 그는 신세계였습니다. 안 찾아가는 사진이 골치 아팠을까요? “맘에 안 드는 사진일수록 빨리 찾아야 한다, 그래야 여학생들이 못 본다”는 그의 말을 신봉했습니다. 뚫어져라 카메라 렌즈나 쳐다보던 우리는 더, 더, 더 활짝 웃었으며 짝다리를 짚거나 거만하게 팔짱을 끼기도 했습니다. 아직 풋내나던 시절에 탕진해버린 미소 때문이겠지요. 별로 웃을 일 없는 나날입니다. 삼화사진관 그 서울 사진사가 사라진 뒤 진구네 둘째 누님도 안 보였다는 소문이 오래 돌았지요. 희미한 세월 속에 또렷이 자신을 찍어두고 간 그, 안 찾은 아니 못 찾은 사진들은 지금도 보관 중일까요? 

 

사람은 가도 오백 년 도읍지는 의구하다는 야은(冶隱)의 시구는 틀렸습니다. 불과 오십 년, 시절도 고향도 간 곳 없습니다. 셀프사진관, 중이 제 머리 깎는 오늘의 자화상입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국회 초당적 협력 요청... “단결과 연대에 나라 운명 달려”

국회·정당인공태양(핵융합)이 뭐길래..." 에너지 패권의 핵심”

국회·정당“제2중앙경찰학교 부지 남원으로”

정치일반전북도청은 국·과장부터 AI로 일한다…‘생성형 행정혁신’ 첫 발

정치일반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특구’ 후보 선정…동물헬스케어 산업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