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참여&소통, 2017 시민기자가 뛴다
[마을학개론 ④ 마을사회] '사회안전망' 구축해 '사회적 자본' 쌓아 '정의로운 대안사회'로사회 안전망 구축, 무상교육·의료 체계 마련 주택·기본소득 등 제공을 / 사회적 자본 축적, 구성원간 신뢰 협동 연대…서로 약속한 규범 잘 지켜 / 정의로운 대안사회, 사람 사는 마을 공동체 등 '헬조선' 탈출 희망 실현을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11.08  / 최종수정 : 2017.11.08  23:01:24
   
▲ 대안사회의 모델로 여겨지는 독일은 중학교부터 농업학교에서 농부가 될 공부를 한다.
 

‘마을 만들기’로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오로지 마을만들기의 3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의 역랑과 진정성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차라리 구조적이고 태생적인 문제다. 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구조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일단 행정편의적이고 기술만능적인 ‘마을 만들기’ 방법론이 문제다. 그 질곡에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 많은 행정과 주민들이 막연히 소망하는대로 대부분의 마을은 관광지나 공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홍보, 마케팅, 호객행위를 열심히 해도 농외소득이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을은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 마을로 돈을 벌 수는 없다. 마을은 단지 주민들의 생활의 터전일 뿐이다. 굳이 마을에 손을 대려면, 예산을 퍼부으려면 마을이 품고 있는 사회적이고, 인문적이고, 문화적인 요소와 자원들을 융·복합적으로 결합, 마치 종합예술 작품처럼 승화시키려는 사업목표를 세우는 게 좋겠다. 결국 ‘마을 만들기’의 방법론은 ‘마을 살리기’또는 ‘마을살이’로 가치관, 그리고 자세와 마을가짐부터 전향하는 게 순서다.

여기서 그런 마을을 이른바 ‘대안마을’로 부르고자 한다. 경제적 측면으로는 1차 유기농산물 생산, 2차 고부가 농특산물 가공, 3차 도농교류와 도농직거래 서비스 등의 밸류체인(Value Chain)이 작동되는 융복합형 농업·농촌 발전전략이 유효하다. 마을공동체사업을 책임지는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사회혁신적으로 지속발전가능한 농촌·지역공동체마을이다.

사회적 측면으로 대안마을은, 도시민, 견학단 등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나 체험놀이터를 조성하는 ‘마을 만들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원주민, 출향인, 귀농인 등 내부인의 안정된 생활과 예측가능한 생애설계를 위한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살이’를 실천하는 생활과 생존의 공간이다. 물론 이를 위한 학습과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깨어있는 마을시민’들이 모여 ‘마을기업’을 함께 조직해 협동해서 관리하고 공동으로 경영하는 생활공동체마을일 것이다.

△대안마을은 곧 ‘사람 사는 복지농촌’이다

   
▲ 농민들이 스스로 세운 곡성 죽곡면의 ‘죽곡 농민 열린도서관’은 대안마을의 대안학교다.

대안마을은 이른바 ‘사람 사는 농촌’을 뜻한다. 즉 마을사람들끼리 서로 돌보고 보살피는 마을단위의 마을복지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마을이다. 오늘날 우리 농촌사회에는 복지의 공백지대, 사각지대가 마치 함정이나 지뢰밭처럼 도처에 산재해 있다. 마을 만들기를 열심히 한다고, 법을 몇 군데 고치고 예산을 좀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예 기왕의 ‘돈 버는 농업’이라는 경제적 잣대와 ‘농촌지역개발’이라는 토건적 잣대는 걷어치우고 ‘사람 사는 농촌’이라는 사회복지의 시각으로 농정을 새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 농민의 주력인 소농, 영세농, 가족농은 고소득, 고부가가치의 농정구호가 여전히 어렵고 버겁다. 그 보다 보건, 의료, 주거, 고용, 교육 등의 사회복지망이 그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최근 복지전달체계를 ‘행정단위’에서 ‘마을단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구도 이어진다. 전북연구원은 ‘전라북도 마을복지 전달체계 구축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관주도 복지서비스에 의존하는 복지는 한계에 달했다”며 복지체감도 향상을 위해 마을단위로 전달하는 ‘전북형 마을복지 모델’을 제안한다.

전북형 마을공동체복지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행정 읍면동 단위의 복지전달체계를 마을단위로 세분화하면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동네주민까지 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 복지제공 기관을 복지시설로 제한하지 않고 복지의 제공 방식을 다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을의 병원, 보건소, 경로당, 반상회, 주민자치회 등으로 복지의 주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적재원이 미처 투입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를 마을의 조직과 자원이 주체적으로, 내생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같은 ‘마을단위 복지’ 제안은 마을단위에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되는 주민참여형 공동체 복지가 대안이라는 진단의 결과다. 다만, 복지예산의 부족을 이유로 자칫 국가와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민간에 전가하는 식의 정책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당연히 정부의 복지 예산의 확충과 집행 효율 제고부터 우선 노력하는 게 일의 순서다.

나아가 농민은 국가의 식량주권과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국가기간산업 농업에 복무하고 있으니 마땅히 공익농민, 또는 사회적 농민이라 할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농민을 ‘사회적 농민’ 수준으로 대접하는 게 보다 근본적인 ‘사회복지 대책’이 될 것이다. 가령 농사만 지어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기본소득 생활비를 지급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민 또는 농촌주민, 귀농인에게는 따로 먹고 사는 생활기술을 가르치는 마을이 있다면 그 마을이 바로 대안마을이다. ‘사람 사는 복지농촌마을’이다.

△대안사회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 안전망으로

   
▲ 대안마을과 대안사회를 꿈꾸는 ‘한국생태공동체마을네트워크회의’ 출범식.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대안마을로 가는 길은 험로다. 마을을 둘러싼 사회의 현실과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주의의 표본이자 신식민지 반봉건사회 같은 ‘헬조선’ 한국에서 마을이나 공동체는 해묵은 난제다. 한국사회의 평균적인 시민들은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 ‘안전하게 사는 문제’에 진력하고 매진하느라 남을 돌보거나 보살필 시간도, 여유도 거의 없다. 그런 처지와 형편에서 마을공동체사업이나 사회적 경제를 시작하거나 참여하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은 있어도 몸이 잘 할 수 없다.

특히 생업과 생활의 공간이 분리, 격절된 도시에서는 일상의 대부분을 생업 현장에서 탕진하느라 삶의 터전인 마을은 그저 숙소 또는 수용소의 모양과 기능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이나 공동체사업현장에 가서 속을 들여다보면 세 부류의 사람들만 유독 눈에 띈다. 마을공동체사업을 생업 삼아 하는 전문 활동가, 어쨌든 ‘먹고 살만한’ 이른바 중산층들, 그리고 다른 기회나 대안이 차단된 이른바 ‘삼포세대’의 청년들이다. 정작 마을공동체의 주력으로 참여하고 활동해야할, 공동체의 돌봄과 보살핌이 절실한 중하위 계층의 주민들, 시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터’에 오로지 매달려 있기 때문에 마을공동체를 기웃거릴 시간도, 힘도 없다.

그런 주민, 시민들과 함께 공동체사업을 모두 함께, 잘 하려면 법, 제도, 정책을 개발하기 전에, 공동체 사업계획서를 쓰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 두려움, 공포심으로부터 주민과 시민들은 우선 해방시켜줘야 한다. 그러자면, 먹고사는 전장의 경쟁 상대인 이웃을, 친구를, 타인을 서로 믿지 못해 공동체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니, 우선 서로 믿고, 서로 약속한 규범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사회적 자본’부터 키우고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나 정부가 시민과 국민을 돌보고 보살피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와 처자식까지 돌보고 보살피느라 남 따위는 쳐다볼 여유나 이유가 없으니, 그래서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불안하고 위험하니 튼튼한 ‘사회안전망’부터 구축해야 한다. 기본소득제로 상징되는 ‘사회안전망’이 일단 구축되면, 공동체 구성원마다 서로 믿고 남을 도울만한 생활의 여유가 생겨 신뢰, 협동, 연대, 규범,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은 저절로 생성, 축적될 것이다. 그런 사회적 자본이 만들어지면 마을공동체는, 사회적 경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발생하고 진화할 것이다. 지금처럼 국가나 정부가 마치 생색내듯 돈 몇푼씩 나눠주며 훈련시키듯 다그치거나 감독하거나 평가하지 않아도 자생적으로, 자조적으로, 자치해나갈 것이다.

   
▲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그러니까 1단계로 사회안전망(무상교육, 무상의료, 사회주택, 고용안정, 기본소득 등), 2단계로 사회적 자본(생활기술 학교, 공유재 은행, 협동경영 조합, 공동체융합 플랫폼 등), 3단계로 법·제도·정책(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커뮤니티 비즈니스, 도시재생, 귀농 등)의 순서와 단계로 ‘공동체사업’의 설계도와 추진전략도 새로, 다시 그릴 필요가 있다. 앞으로 수십년이 걸리든, 수백년이 걸리든, 그 길이 ‘불량사회 한국, 불행사회 한국’에서 탈출, 마침내 ‘사람 사는 마을공동체’, ‘정의로운 대안사회’로 들어가는 옳고 바른 외길로 보인다. 꿈이나 욕심이 아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선진유럽의 국민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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