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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통해 한글보급 앞장선 천주교 전주교구
연극 통해 한글보급 앞장선 천주교 전주교구
  • 김태경
  • 승인 2019.10.08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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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이영춘 신부, 전주교구사 소개
어린이 중심 ‘성극’ 교육 및 조선어학회 잡지 '한글' 보급
일제강점기 애국심·민족의식 지켜내기 위해 한글교육 힘써
해방 후 매년 성탄 앞두고 전주본당서 ‘소인극’ 공연 성행
사향가. 민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글로 지은 천주교 신앙가사(1850년대).
사향가. 민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글로 지은 천주교 신앙가사(1850년대).

“‘한글’이 나왔다. 훈민정음의 아들로 나왔으며 2천3백만 민중의 동무로 나왔다. 무엇하러 나왔느냐. 조선말이란 황양의 황무지를 개척하여 조선글이란 보기(寶器)의 묵은 녹을 벗기며 조선 문학의 정로(正路)가 되면 조선 문화의 원동력이 되어 조선이란 큰 집의 터전을 닦으며 주초를 놓기 위하여 병인 이듬해 정묘년 벽두에 나왔다.” (1927년 2월 조선어학회가 출간한 잡지 <한글> 중.)

 

민중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자산 ‘한글’. 민중의 삶이 되고 문화를 살찌웠던 우리말과 글은 지난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켰던 ‘민족의 암흑기’ 일제하에서도 이 나라의 뜻있는 지식인들은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며 민족의식의 불씨를 지켜냈다.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영춘 사도요한 신부는 한글날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 우리말 사랑운동을 중심으로 민족문화 수호에 앞장 선 천주교회와 전주교구의 역사를 소개했다.

이영춘 신부는 “일제의 지배 아래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일은 공동체에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면서 “천주교회에서도 한글로 된 가사와 성경을 만들어 보급하고 ‘연극’을 통해 대중이 한글을 익혀 사용할 수 있도록 힘썼다”고 설명했다.

 

△‘성극’ 활용해 어린이 한글 교육

한글 보급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활동이 선행돼야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수호할 수 있다는 민중의 믿음은 천주교회 전주교구에서도 메아리로 울렸다.

<전주교구사>에 따르면 천주교 전주교구는 성극(聖劇)을 활용해 어린이 한글 교육에 힘을 쏟았다. 1926년 제주도에서 전주 본당으로 온 최정숙(베아트릭스) 선생이 소년소녀 교리반을 지도했다는 기록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들이 애국심을 가지고 국어를 배우는 데 ‘연극’은 큰 효과를 보였다. 성경에서 소재를 따서 꾸민 종교극을 익힌 어린이들은 공연 무대에 서서 우리말로 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신명초행. 한글로 번역한 천주교 신앙생활 입문서(1860년대).
신명초행. 한글로 번역한 천주교 신앙생활 입문서(1860년대).

△전동 본당서 ‘한글보급운동’ 앞장

당시 한글보급운동에 앞장선 곳은 전동 본당이었다. 본당과 공소에는 문맹퇴치의 일환으로 야학을 설치해 한글 교육을 중점적으로 담당하도록 했다.

1935년 6월 서정수 아릭스 신부가 전주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하면서 청년들과 함께 한글 보급에 나섰다. 1927년 2월 조선어학회에서 출간한 잡지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일제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다녔다. 이듬해 서정수 신부가 정읍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한글에 대한 전주본당 청년들의 열의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국사·한글 향한 교육열, 서울까지

해방 후인 1945년말 전주본당 청년회에서는 초·중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해성초등학교(현재의 성심여중고) 강당에서 한국 역사와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강습회를 열었다. 국사와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가 없어 속앓이를 하던 교사들을 비롯해 ‘뜻글과 쓰임’이라는 표제의 교재를 받기 위한 발길이 매회 300명을 훌쩍 넘겼다.

1945년 11월 조선어학회에서 우리말로 된 교재 <한글 첫걸음>을 펴내자 전주본당 청년회에서는 이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회원을 파견했다. 우리 역사와 한글 교육을 통해 민족교육을 재건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보람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하에서부터 이어진 연극활동은 해방정국을 맞아 더욱 활발하게 전개됐다. 전주본당 청년들은 민족의식을 높이고 한글 가르치기 위해 매년 성탄 전야 아마추어 연극 ‘소인극’을 공연했다. 1949년 12월 23~24일 전주 도립극장에서 선보인 ‘김대건 전’ 공연은 민족의 종교적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친 김대건 성인의 생애가 많은 관람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는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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