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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 전북 화제의 당선자(2)

● 절제·예의 갖춘 '조용한 승부사'

- 새정치민주연합 김승수 전주시장 당선자 "아들같은 시장·겸손한 시장 될 터"

김승수(46) 전주시장 당선자가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란 예상을 깨고 별다른 이변없이 상대 후보를 무난하게 따돌리고 당선되면서 다시한번 눈길을 끌고 있다.

 

세련된 매너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 당선자의 별명은 ‘조용한 승부사’이다. 전북도 대외협력국장과 정무부지사 시절에 붙여진 별칭이다. 당시 도정 현안이 발생할 때는 서울에 상주하면서 특유의 친화력과 돌파력으로 현안을 깔끔하게 해결한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2년 11월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그는 당시 공직생활에서 축적해 온 경험과 중앙 정치권의 인맥을 활용해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된 지 18일만에 국회를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 같은 스타일은 이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는 이번 선거를 최대한 조용하게 치렀다. 상대 후보의 네커티브에는 대응하지 않았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애도의 뜻으로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했다. ‘절제와 예의’의 이미지를 보여준 이 전략은 주효했다. 선거초반 ‘나이가 어리다’는 세간의 평가가 ‘참신하고 신선하다’로 바뀌면서 노인층의 호감을 얻는 등 상당한 효과를 올렸다.

 

이처럼 젊은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행보는 김완주 지사와 16여년간 동고동락했던 시간도 한 몫한다.

 

대학(전북대 정외과) 졸업 후 국제회의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1998년 김 지사와 처음 만났다. 대학 은사의 권유로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과 연을 맺게 된 그는 직언할 수 있는 ‘좋은 참모’가 되겠다는 생각에 김 시장의 수행비서로 활동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전주시 비서실장과 전북도 비서실장, 전북도 대외협력국장, 최연소 전북도 정무부지사 등을 거치며 행정경험을 쌓았다. 이 같은 경력은 선거기간 동안 상대 후보들로부터‘김 지사 적자론’과 ‘수행 비서 출신’이라는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에 그는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진심’이라고 말한다. 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원하는 것은 ‘일만 잘하는 능력도 아니고, 예산 따오는 기술도 아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정치에서도 사람의 냄새를 맡고 싶고, 정치에서도 진심과 진정성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도덕성과 청렴성은 ‘진심의 정치’, ‘새로운 정치’를 일궈내는 자양분이라고 말했다.최근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조의금을 일절 받지 않고 선거운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는 풀빵장사 등 온갖 궂은 일로 4남매를 키웠던 어머니가 마지막 유언처럼 병상에서 건넸던 “세상과 사람들 앞에 겸손하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그는“어르신들에게 아들 같은 시장이 되고, 시민들 앞에 겸손한 시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김준호 기자

 

● 12번째 도전 '배수진' 통했다

- 무소속 박경철 익산시장 당선자 "시민에 재정상태 투명하게 공개"

반평생 정치인생의 한을 푼 박경철 익산시장 당선자(58).

 

11번 선거에 나서 모두 고배를 마신 그가 12번째 도전에선 마지막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동정론을 이끌어내며 승리의 쾌감을 맛봤다.

 

국내 선거 사상 한 정치인이 한 지역구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 선거에 12번 연속 도전한 것은 박 당선자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인 전북에서 그것도 현역 시장을 상대로 무소속으로 도전해 이뤄낸 성과여서 승리의 값어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두 후보의 표차는 736표. 짜릿한 승리를 거둔 박 당선자는 당선 소감에서도 가장 먼저 “익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민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그간 박 당선자는 이한수 후보와 두 차례 선거에서 만났지만 번번이 패배를 맛봤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도 그가 당선될 것이란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출마 기자회견에서 “이번이 마지막 도전으로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고 선거과정에서도 마지막 도전을 강조하는 비장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세월을 거슬러 박 당선자의 긴긴 낙마의 역사는 30대 초반이던 1988년 한겨레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작됐다. 이후 1995년 통합민주당 후보까지 두 번을 제외하고는 무소속의 길을 이어왔다.

 

숱한 선거를 치르면서 재산을 탕진하면서 출마가 직업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었지만 시민단체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선거에 나설 때마다 그의 이력에는 익산시민연합 상임대표였고, 이런 그에게 고정 지지율 20%를 형성해 나갔다.

 

지역 살림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은 박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배수진과 함께 현 시장 재임 8년간 늘어난 부채문제를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마지막이라는 배수진은 동정론을 이끌었고, 부채문제는 정치에 관심 없는 유권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전략에 힘입어 익산시장 사상 처음으로 양자대결로 귀결된 이번 선거에서 이한수 후보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런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당선의 영예를 안은 박 당선자는 “선거를 통해 갈라진 민심을 모으고 서로 이해와 화합을 통해 상생 발전하는 익산을 창조해 나가겠다”며 “이번 선거결과는 시민들의 혁명으로 보고 시민 곁에 서는 첫 번째 시장이 되겠다”고 피력했다.

 

그는 취임 후 가장 시급히 해결일 현안을 묻는 질문에는 “익산의 재정 상태를 투명하게 파악해 시민에게 공개하고 전시성 개발예산을 삭감하겠다”며 부채문제 해법모색을 시작으로 4년의 임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익산=김진만 기자

 

● 초박빙 접전속 189표차 대역전

- 무소속 박성일 완주군수 당선자 "시내버스 등 현안 해결에 최우선"

완주군수에 당선된 박성일 후보자는 개표와 함께 시종 경쟁자와 초박빙의 접전을 펼치며 타들어 가던 가슴이 숯덩이로 변해가던 다음날 새벽녘에야 189표 차이로 승리를 확정,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박 당선자는 선거 초반 열세를 딛고 무소속으로 대역전극을 연출해 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박 당선자는 선거 중반 이후까지 언론사의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유력후보에 상당히 뒤쳐졌었다. 박 당선자는 이에 대해 “착신전환 유선전화가 여론조사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고, 지역에서의 활동이 적었던 관계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결과”라고 분석했다.

 

새정치연합의 강세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승리했다는 점에서도 정치적 의미가 크다.

 

박 당선자는 “무공천을 약속했던 새정치연합이 공천으로 선회하고, 또 특정 후보 밀어주기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군민들에게 직접 선택을 받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며 “이번 승리는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행안부 감사관·정보화기획관과 전북도 행정부지사에 이르는 공직생활 33년을 마친 박 당선자는 안정적으로 군정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 당선자는 “전직 군수가 벌인 시험적 사업들이 바람직한 부분이 많다고 판단, 이들에 대해 사업성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투명하고 깨끗한 행정을 지향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선거는 군민들의 승리’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 그는 “선거기간 동안 약속한 완주-전주 시내버스 문제 등 현안부터 먼저 풀어나가는게 최우선 과제”라면서 “군정과 정책의 지향점은 ‘더 잘 사는 완주’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완주=김경모 기자

 

● 추진력으로 막판 뒤집기 이변

- 무소속 이항로 진안군수 당선자 "연금복지 통해 잘사는 진안 만들 것"

전북 기초단체장 선거 최대 접전 지역으로 불리던 진안군수 선거에서 무소속 이항로 후보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는 이변을 연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 당선자는 최후의 승자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더욱 값지고 눈물겨운 결과였다.

 

지역특성상 막대기만 꽃아도 당선이 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텃밭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공천 후보와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군수 출신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이라는 쾌거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항로 군수 당선자는 진안읍 태생으로 1975년 공직에 입문하여 진안읍장, 부귀면장, 주천면장을 역임하고 공직생활 38년을 마감한 뒤 이번 6·4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진안군수 선거에 출마를 했다.

 

또한 평소 지역주민들 입장에서 묵묵히 일했으며, 자신의 입장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공무원 생활을 해 면장·읍장 재직시절 주민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특히 이 당선자는 다른 후보들이 인물론을 내세우며 표심공략에 나선 것과 달리 밑바닥 민심을 잘알고 있는 것을 십분 선거전략에 활용, 지역을 위해서는 진안만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를 바탕으로 지지층을 넓혀갔다.

 

이항로 당선자는 학력 등은 일천하지만 강력한 추진력의 대명사였던 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경영방식을 행정에 접목해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당선자는 “군민을 위한 연금복지를 만들어 진안군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겠다”고 강조한 뒤“선거 운동을 하면서 상대후보들의 비방과 허위 사실때문에 힘들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였고 군민과 진안군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군수에 출마한 만큼 살기 좋은 진안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안=김태인 기자

 

● 재검표 끝 도내 최소 표차 신승

- 새정치민주연합 박우정 고창군수 당선자 "아름답고 청정한 고창 만들겠다"

이번 6·4선거에서 박우정 고창군수 후보가 도내에서 최소표차(105표)로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105표 차가 말해주 듯 박 후보의 당선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박 후보는 남은 인생을 고향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6년전 귀향하여 지역 곳곳을 누비며 군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했다.

 

지난 2010년 고창군수에 도전해 이강수 군수에게 패한 뒤 이번 두번째 도전에서 우여곡절 끝에 새정치연합 공천권을 획득했다.

 

당선을 위한 8부능선을 넘었다는 지역정가의 대세론 가운데 순탄하게 선거항해를 하는 듯 했으나, 무원칙한 새정치연합의 공천과정에 불만을 품은 정학수·유기상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 이은 정학수 후보로의 단일화로, 선거 정국이 급격히 요동치면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초접전지역으로 변했다.

 

선거전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연이어 터진 박 후보의 악재로 정 후보가 막판 대역전극을 펼칠 것이라는 여론과 그래도 새정치연합의 박 후보가 신승하지 않겠느냐는 엇갈린 전망속에 개표는 시작됐고, 개표 후반까지 400~700여 표까지 정 후보가 앞서 달리며 무소속의 대역전극이 점쳐졌다.

 

그러나 개표 막판으로 가면서 표차가 좁아 지더니 급기야 300여 표를 남기고 40여 표차까지 좁혀졌다. 남은 300여 표에서 90여 표를 이긴 박 후보가 결국은 48표(잠정집계)차로 당선됐으며, 새벽 5시까지 이어진 재검표를 통해 최종 105표차로 승리했다.

 

마지막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박 후보는 당선소감에서 “고창의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6만여 군민 여러분의 엄중한 뜻으로 받아들여 ‘희망이 있는 아름답고 청정한 고창’을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고창=김성규 기자

 

●'6전 7기 뚝심' 방폐장 역경 넘어

- 무소속 김종규 부안군수 당선자 "과거 갈등 치유·군민 화합에 주력"

6·4 지방선거 부안군수 선거에서 49.19%(1만6471표)의 득표율로 당선된 무소속 김종규(62) 당선자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역경의 파노라마다.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이병학 후보와의 전직 군수 리턴매치에서 승리했지만 그동안의 와신상담(臥薪嘗膽)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민선2기 군수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뒤 지난 2002년 민선3기 부안군수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정치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부안군수로 재직하던 2003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을 유치하려다 지역사회의 극렬한 찬·반 갈등에 부딪혔으며 곧이어 치러진 2006년 지방선거에서 패하면서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 있었다.

 

당시 선거판도는 방폐장 사태 이후 추진 찬·반 여론이 팽팽한 대결구도였으며 김 당선자는 열린우리당과 분당한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이병학 후보에게 4400여표 차로 패했다.

 

이후 김 당선자는 이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1년여 만에 군수직에서 물러나자 2007년 부안군수 재선거부터 국회의원 선거 등 3차례나 선거에 나섰지만 모두 패하면서 정치 재기에 실패했다.

 

민선3기 군수 재직시절 방폐장 유치를 적극 추진해 방폐장 찬성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면서 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방폐장 찬·반 대결구도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김 당선자와 이 후보가 방폐장 찬·반 구도의 상징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결국 김 당선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김 당선자는 “이번 선거 결과는 과거의 갈등에서 벗어나 이제 미래로 나아가라는 군민의 강력한 주문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솔선해서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부안=양병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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