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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없는 동학농민혁명

▲ 총무국장 겸 논설위원
가고 오는 해가 맞닿아 있다. 또 다른 시간의 마디. 무엇을 과거로 보내고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건 뭔가. 해마다 육십갑자가 반복되고 있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전북의 올해는 각별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그것의 두 바퀴를 돌아 다시 맞은 갑오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혁명의 발상지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기억들을 후손들의 자부심과 지역의 거대한 전환기로 재구성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기게 됐다.

 

국가기념일 제정 놓고 10년 논쟁

 

세월을 거슬러 120년 전의 전봉준을 불러내는 기념행사들은 곳곳에서 유별났다. 혁명을 창극과 미술 등 이런저런 장르에 기념비적으로 담아내려는 열정들이 작업의 띠를 이루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녹두꽃’의 정신적 가치를 추스르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대다수 일정이 일시적인 이벤트에 머물고 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에는 역부족이었다. 각지의 유적지들을 명소화하거나 관련 프로젝트들도 힘을 얻지 못했다. 가슴 뛰었던 2주갑의 의미가 뭉그러졌다.

 

이처럼 아무리 혁명을 기리려고 해도 한계다. 혁명정신인 적폐 척결과 도약을 위한 과제 수행도 잘 안 된다. 상징적 구심체인 발판이 없어서다. 기념일이 없다. 국가기념일 제정을 놓고 소모적 논쟁만 10년째다. 한심한 일이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논의가 시작됐지만 자중지란으로 시간을 허송했다. 기념재단이 2011년 기념일제정추진위원회를 만들었어도 끝내기는 벽에 부딪쳤다. 소지역간 이기주의가 암초다.

 

지난달 대전에서 열린 기념일 제정 토론회에서도 고질적인 갈등이 재연됐다. 결론 없이 무산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기념일 제정 문제만 나오면 서로 치고받는 모습이 지겹다”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김석태 유족회장도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혁명에 나서 학살을 당한 선조들 앞에 정말 부끄럽다”며 개탄했다. 내년 2월께 재논의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집단적 무능과 무감각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부끄러운 ‘민낯’이다. 언제까지 논쟁을 이어가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빛나는 혁명의 기치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기념일로 새롭게 끄집어내야 한다. 왜?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 제정은 한때 기득권의 과소평가로 왜곡됐던 역사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통합의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게 한다. 당시 봉건사회의 부패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던 민중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역사의 무게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기념일은 살아 있는 역사교육이자 국민통합의 토대가 된다.

 

국민을 통합하고 지역의 발전을 꾀하려면 강력한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그 한복판에 동학농민혁명이 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동학정신은 전북정신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북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도 과거로 포장된 버전에 머물러 있다. 무장기포일(4월25일)을 기념일로 주장하는 고창과 황토현전승일(5월11일)을 내세우는 정읍 등 지역의 힘겨루기에 밀려 역사의 새장에 여전히 갇혀 있다.

 

그러다보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삐걱거리고 있다. 판단이 각각이니 의견은 분열로 치닫는다. 이렇게 손발이 안 맞는 상황에서 과연 혁명의 정신이 더 뻗어갈 수 있겠는가. 경쟁력 있는 사회일수록 가치판단에 갈등이 적다. 물론 사회가 다른 가치는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로만 일사분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중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다.

 

지역 힘겨루기 끝내고 의기투합을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새 희망을 다짐해야 할 때다. 가는 해에 넌더리나는 갈등은 떼어내고 오는 해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놓치지 말자. 그런 점에서 기념일 제정의 해법을 찾는 의기투합을 보고 싶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의 길을 가는 모습이 절박하다. 국가기념일은 요행수로 어물쩍 넘어오지 않는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주도체제를 꾸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 기념일 제정을 끌어내야 한다. 10년이나 기념일 없이 논쟁만 벌였다면 이제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할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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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성 dschoi@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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