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5-07 22:51 (목)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스포츠 chevron_right 스포츠일반
일반기사

전북 태권도 '대부', 전일섭 선생

전일섭 선생(79)은 누구나 인정하는 ‘전북 태권도의 대부’이다.

 

1940년대부터 운동을 시작한 전일섭 선생은 도내에 태권도가 튼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1950∼1970년대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체육관을 설립했다.

 

한국태권도 초창기에 활동했던 선생은 전북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태권도를 발전시켜 어느덧 태권도가 시드니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게 하는 터를 닦았다.

 

전주가 고향으로 전북의 태권도를 위해 평생 몸을 바쳤던 전일섭 선생의 제자는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맹활약, 국기 태권도를 세계인이 쉽게 배우고 즐기는 스포츠로 만들었다.

 

“태동기 한국태권도의 요람, 전라북도에 태권도 성전이 유치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선생은 79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십년 지난 일을 또렷히 기억하며 강건한 자세로 태권도 일생을 말하는 전일섭 선생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선생이 태권도를 시작한 것은 1946년. 일본에서 운동을 했던 친형 전상섭씨와 주위의 권유로 조선 연무관내 ‘지도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이듬해인 1947년 5월 군산체육관이 개관하자 고향의 인사들은 국내에서 이미 선구자격이었던 전일섭 선생을 관장으로 초빙했다. 지방에는 태권도를 가르칠 사람이 없어 선생을 모셨던 것.

 

이때부터 선생은 본격적으로 도내에서 제자들을 양성했다.

 

1955년 전주에 ‘전북체육관’이 개관하면서 전주의 행정계와 지방의원 등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전일섭 선생을 모셨다. 1981년 제자에게 태권도계에서 맡았던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선생은 ‘전북태권도의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해 왔다.

 

-1950년대의 상황을 말씀해 주십쇼.

 

“전북체육관은 태권도와 권투 레슬링 씨름 유도등을 함께 수련하던 장소였지. 하지만 태권도가 가장 인원이 많아 나머지 경기종목의 살림을 도맡다시피 했어. 나는 수입과 지출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보수도 받지 않았어”

 

-태권도가 좋아서 제자양성에 봉사하셨는데 그렇다면 생활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 작은 꿈은 ‘뼈병원’을 세우는 것이었어. 운동을 하다보면 다치는 일이 많으니까 내가 배운 골절상 치료법이라든가 뼈맞추는 법들을 써먹고 싶었지. 결국 병원 설립이 무산돼 생계를 위해 전북체육관을 맡아 운영했지”

 

-전북태권도협회를 비롯 시·군협회의 태동기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1962년 11월 대한태권도협회가 창립된 후 며칠만에 전북태권도협회가 만들어졌지. 도협회를 세운 후 각 시·군을 찾아다니며 제자들과 해당 지역 협회를 만들었어. 전북만큼은 다른 곳보다 태권도를 확실하게 자리잡게 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협회의 틀은 굉장히 빨리 잘 만들어졌어”

 

-중앙무대 활동도 뛰어났죠.

 

“뛰어나긴 뭘…. 대한태권도협회를 만들었으니 대한체육회 산하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경기화’였는데 경기규칙이 없는 거라. 그래서 경기규칙 만들고 태권도대회 창설해서 대회규정 만들고 그러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지.

 

더욱이 태권도 대련은 큰 부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보호장비인 ‘호구(護具)’를 디자인 제작해 서울로 보냈어. 지금 시합에 쓰고 있는 호구는 그 때 것이 발전한거야”

 

-당시 대회성적은 정상권에서 군림했지요.

 

“1964 전국체전에 태권도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어. 당시 단체전 우승을 비롯 내가 3대에 걸쳐 전북협회장을 맡고 있던 10년동안 종합성적으로 우승 7번, 준우승 2번, 3위 1번의 성적을 거뒀지. 타 시도에서 전북을 넘보지 못했어. 말그대로 무적이었던 셈이야”

 

-최근 전국체전에서 전북 태권도는 종합 3위권에는 들지 못하고 종합 4∼9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 대단한 성적이었습니다. 왜 전북이 후퇴했을까요.

 

“뭐 서울에 사람이 몰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열심히들 하니까 그렇게 됐지. 모든 것은 서울 중심이잖아”

 

-정부에서 종주국으로서 국기 태권도를 세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2천억원을 투입해 성전(聖殿)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 가장 알맞은 장소라고 보십니까.

 

“전북은 태권도 성전 건립 장소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곳이야. 초창기부터 좋은 선수가 전북에서 제일 많이 나왔고 해외에 나가있는 태권도인이 가장 많아.

 

한국태권도의 발전은 전북을 빼고 생각할 수 없는 데 이런 점이 감안이 됐으면 해. 지금 도내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 노력도 대단하고. 국내와 해외의 태권도인들이 힘을 합치고 각계에서 적극 나서야 돼.

 

태권도 성전을 만들어 공원 수련단지 청소년단지 영상단지 한방·기공단지 박물관 체육관 숙박시설등이 들어선다면 훌륭한 관광지가 될거야. 전라북도 전체가 나서서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사업이지”

 

◈ 전일섭 선생은 누구

 

선생의 제자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미국태권도협회 이상철 회장을 비롯 장영준 조점선 박연희 박동근 안대섭 최익범씨등이 미국에서 활동중이고 캐나다 전계배씨, 호주 오영일씨, 핀란드 황대진씨, 독일 김태현씨, 카타르 나종열씨등 1백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해당 국가에서 국민들의 체력을 향상시킬 정도로 태권도를 보급했고 태권도외교를 통해 국위를 선양했다.

 

국내에는 대한태권도협회 이승환 상임부회장을 비롯 유병용 문창균씨, 도내에서 장한철 김재화 유형환 이병하 유기대 강영수 이영기씨등이 직계 제자들이다.

 

이외에도 직접 가르친 제자들은 수천명에 이르고 있고 지금 태권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수백명에 이르는 가히 ‘태권도의 태두’라 할 수 있다.

 

◈ 태권도 성전사업은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은 지난 4월 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태권도공원 조성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전세계 1백50여개국, 5천만 태권도인의 구심점이 될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의 부지선정, 설계 등 세부사업계획을 마련, 이를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태권도공원은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위상을 더 높이고 태권도를 21세기 국가전략상품화한다는 목표아래 태권도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서 100만평 규모의 부지에 태권도 상징물로서 태권도전당과 연수·수련을 위한 수련단지, 관광단지, 청소년단지, 무술영상단지 등 동양적 신비감과 경외심이 우러나오는 6개의 대단위 종합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문화관광부는 5월말까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후보지를 추천받아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7월말까지 후보지를 선정하고 기본설계를 통하여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만들 계획이며, 국고와 민간기금 등 모두 2천억원이상의 사업비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제1단계로 2001년까지 기본 및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제2단계로 2002년 상반기부터 기반시설을 착공 2004년까지 태권도 전당, 태권도 수련단지 등을 완공하여 주요시설을 2004년에 개관을 하게 된다. 청소년, 관광, 영상, 숙박, 한방단지 등은 2007년까지 단계별로 완공할 계획이다.

 

현재 중국 소림사, 일본 닌자공원 등 무술과 관련된 테마파크가 있으나,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가장 많은 수련인구를 가지는 등 범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무도종목임을 감안할 때, 전세계 태권도인의 순례장 및 훈련장으로서 외국의 유사 테마파크보다 훨씬 애호받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백기곤 baikkg@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스포츠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