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씨(39, 원광대교수)가 새시집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문학동네)를 냈다. 9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이후 세번째 시집이지만 6년이란 오랜 침묵끝에 내놓는 시집이어서인지 시세계의 변화가 한층 깊다.
-한 나무의 잎새들도 자세히 보면/제각기 색을 달리하며 존재의 경계를 이루어/ 필생의 힘으로 저를 흔든다/처음에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줄 알았지/그게 아니라 아주 오랜 기다림으로 스스로를 흔들어/바람도 햇살도 새들도 불러모은다는 것을/흔들다가 저렇게 몸을 던지기도 한다는 것을-(‘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중에서)
그의 시들은 서술적이다. 지나간 시간들에 놓여있는 흔적과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그의 시세계는 우울하고 쓸쓸하다. 사랑과 실연, 이별의 뒤에 남은 슬픔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그의 시들은 화려하거나 높은 것, 당당하고 활기에 찬 것 보다는 낮고 연약한 것, 힘겹고 외로운 것들을 이야기한다.
-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적멸 첫 7행)
우수에 차있는 그의 시는 낮으막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있고, 시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느릿느릿 그려낸 세상은 쓸쓸하고 서럽다. 그런데도 그의 시들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이쯤되면 안도현의 평처럼 ‘내팽개치고 싶은 과거도 지루한 일상도 그에게 와서는 단단하게 빛나는 한편의 시가 되는’ 이유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쌈빡한 시어들, 톡톡튀는 감각적 시어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시읽기가 자칫 지루해질 수 도 있을터. 그러나 고요하고 섬세하고 낮으막한 것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떠가는 기쁨은 적지 않다. 그의 시가 지닌 미덕이다.
시인은 ‘글썽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뿌리가 젖어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일러준다.
쓸쓸함이 가득차오는 가을의 시집으로 더욱 제격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