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같으면 한창 모내기가 진행 될 때인데, 많은 논에 벌써 벼들이 땅 맛을 알아 가는지 가물가물 자리를 잡았다. 참 예쁘다. 이제 산에는 밤꽃이 피어나리라.
농사철이 돌아 올 때마다 빈 들판을 바라보며 '올해 저 논에는 모가 제대로 다 심어질까?'를 걱정하지만, 농사철이 되면 논마다 어김없이 모가 심어져 저렇게 자란다. 허리가 굽을 대로 다 굽은 머리 허연 농부들이 논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벼들이 돌아앉는 논두렁을 이렇게 걸으면 많은 말들이 떠오른다. 농사, 농업, 밥, 생명, 환경, 일과 놀이, 농악, 두레, 새참, 공동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말들이 떠오른다. 허리 굽혀 땅을 파고 햇살 묻은 씨를 땅에 뿌려 농사를 짓고 거두는 그 느림과 기다림의 정서가 사라진 곳에는, 방향 없는 속도주의, 순간을 모면하려는 찰나주의, 지독한 개인주의, 기회를 잡아 한탕주의, 너 죽고 나사는 이기주의, 말초적 쾌락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모두다 순간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부산물들이다. 자연과 인간성이 망가지고 죽어 갈수록 자본은 더욱 빛을 내며 인간과 자연을 물어뜯어 낫지 않을 상처를 낸다. 마침내 모두 망할 이 반문명적이고 동물적인 현상을 우린 진정한 문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동물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어떤 때일까?
논과 밭 구별 못하는 시골아이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함께 논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아이와 나는 논두렁에 앉아 논에 모를 내고 있는 이앙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저 것이 뭐예요. 아이가 가리 킨 것은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떨어지는 물꼬였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시골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논과 밭을 구별하지 못한다.
날마다 논과 밭을 보고 그 곁을 지나다니면서도 모를 모르는 것이다. 모를 모르고, 물꼬를 모르고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 건강하게 살고 있으면 됐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면 할말이 없다. 나는 시대 착오적이고 철이 없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농부와 아이들에게 걸고 살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늘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하고, 과거 회귀적이라고도 한다. 그 말에 대항 할 말도 내겐 없다. 정말이지 나는 세상을 뜯어고칠 아무런 힘이 없으므로 그들을 사랑했다.
우리들은 너무 격동기와 과도기와 국난 속에서 산다. 사람 사는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인가? 하루도 평안과 안정된 모습이 없는 일상의 축제를 만들며 산다. 평화와 안정을 모르는 이 격정적인 생활이 가져온 것은 알 수 없는 불안 심리이다. 그 불안 심리가 불러오는 것이 축제다. 축제, 축제는 일상의 고통과 괴로운 순간을 모면하려는 항생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보약이어야 한다. 축제가 아름다운 건 그 축제의 마당이, 세상의 모든 갈등을 함께 묶어 녹여내는 대승, 대동적인 화해와 해방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맨발로 논 들어가본 지 오래
강력한 살충제와 농약이 뿌려진 논은 미꾸리도 올챙이도 우렁이도 거미도 제비도 논바닥에 그 어떤 잡풀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이 나는 무섭다. 이제 개구리가 논으로 뛰어드는 논두렁에 앉아 차근차근 풀을 베어 가는 농부도, 가방을 메고 산그늘을 따라 집에 가는 아이들도 없다.
맨발을 벗고 논에 들어 가본지가 까마득하다. 그러고도 시를 쓴다고 나는 까분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 갈 길을 스스로 지워버리며 우리들은 어디를 향해 이리 질주하는가.
김용택(시인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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