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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느리고 조용한 혁명

 

 

 

유럽에서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혁명이 우리 눈앞에서 소리도 없이 전개되고 있다. 대략 3 세기 전에 유럽은 흔히 근대 국민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의 틀을 시작하였는데 이 것이 당시로는 예상할 수도 없는 큰 성공을 거두어 마침내 온 세계가 거의 아무런 빈틈도 없이 국민 국가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유럽에서는 지난 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여 이 과정이 느리고 조용하지만 착실한 성과를 이룩하면서 계속되고 있는데 이 것이 장기적으로 인류의 운명과 역사에 미칠 영향은 적어도 근대 국가의 경우만큼이나 심대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이제 막 종말을 고한 지난 20 세기를 정치사적인 관점에서 회고하여 보면 한 마디로 거대 정치의 시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결과 이 세상과 사람의 모든 일을 정치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만큼 정치에의 열정이 컸었다.

 

토마스 만이 "현대에서 모든 문제들이 점점 더 정치의 영역에서 정의된다"한 것은 이런 현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20세기가 혁명과 세계대전 같은 거대한 정치적인 사건들과 이른 바 "위대한 지도자"들로 점철되게 된 것이다.

 

이 거대 정치의 화두들은 이념, 국가, 민족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요구하였던 반면에 일반인들의 생활의 질이나 도덕적인 수준 면에서 보면 아무런 향상도 이루지 못한 셈이다.

 

 

2차 대전 이후에 서구에서 시작된 유럽 통합 운동은 거창한 이념이나 정치적인 슬로간도 없이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도 없이 진행이 되어 왔지만 역내의 기능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민족주의적인 갈등을 해소하며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자유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창달하고 보급하는데도 큰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또한 이른 바 "유연한 세력(soft power)"으로서 세계에서 평화를 담보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지난 12-13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 연합 정상회담에서는 2004년 5월 1일을 기하여 중·동구 10개국이 새로이 유럽 연합에 가입하도록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서 조용한 혁명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로서 EU는 회원국 25개 나라, 인구 4.5억, 총 교역 규모 4.5조 유로의 거대 경제권으로 성장하게 된다.

 

 

영토와 인구 면에서 증가에 비하면 신규 회원국들의 형편에 따라 GDP나 총 교역 규모의 증가는 미미한 편이다. 그러나 이 번 EU확대의 의미는 미래 지향적인 면에서 더욱 큰 것이다. EU는 수많은 차질과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체제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신규 가입 합의국들 중에 몰타와 사이프러스를 제외하면 모두가 이전의 공산 국가들이다. EU는 요란한 정치적인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착실하게 정치적인 이상을 보급해온 것이다.

 

아울러서 이 번의 확대를 통하여 EU의 경제권은 25개국의 회원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자유무역지대를 형성중인 지중해 연안 및 북 아프리카 국가들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터키와도 2004년 이후에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물리적인 것 이상의 새로운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셈이다.

 

 

확대된 유럽 연합은 현실적인 면에서 우리나라에게 기회와 함께 문제도 제기한다. 당분간 한국과 EU의 교역 규모는 큰 변화는 없으리라고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세계 최대의 선진화된 단일 경제권 출현으로 교역과 투자 확대의 기회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유럽 역내의 단일 시장 확대로 인한 무역 전환 효과 및 역외 국가에 대한 새로운 무역 장벽과 비무역 장벽의 우려도 있다. 우리는 EU확대로 인한 긍정적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부정적인 요인 극복에 지금부터 마음을 써야한다. 그러나 EU의 부단한 확대에서 우리가 얻을 가장 큰 교훈은 새로운 정치적 공간의 창출과 새로운 정치 스타일에 대한 모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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