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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라 퐁텐의 寓話

 17세기 프랑스 시인 라 퐁텐의 우화(寓話) 가운데 '사자의 정의'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콜레라가 만연하여 짐승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사자왕은 모든 짐ㅅㅇ들을 소집해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불행은 하늘이 우리들의 죄를 벌주기 위해 내린 시련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에서 가장 죄많은 자가 하늘의 노여움의 화살을 받아 희생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각자가 저지른 죄에 대해 참회해야 할 것이다.'

들물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

그러면서 사자왕이 먼저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 '나는 죄도 없는 염소를 잡아 먹었고 그 뿐아니라 그 염소몰이꾼마저 잡아 먹었다.' 그러자 여우가 사자왕의 비위를 맞추듯 이렇게 말 했다. '폐하, 그것은 너무도 양심적인 말씀입니다. 저 미천하고도 어리석은 염소에게는 폐하가 잡수셨다는 것 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영예였을 것입니다. 또 염소몰이꾼 역시 평소 짐승들을 멸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렀던 무리와 한 패였습니다.'

여우의 뒤를 이어 호랑이 곰 표범등 사자의 측근들이 적당히 가벼운 죄만을 참회하고 그 자리를 넘겼다. 맨마지막으로 노새의 차례가 왔다. 노새가 잔뜩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언젠가 저는 남의 땅을 지나가다가 허기를 견디지 못해 그만 몰래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짐승들은 입을 모아 일제히 유죄(有罪)를 외쳤다. 심판관 역할을 맡고 있는 늑대는 이 노새를 희생물로 바친다고 선언했다.

지금 정치권이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전 고문의 현대 비자금 2백억원 수수설로 시끄럽다. 본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계에 떠돌던 '설(說)'이 검찰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다. 그런 가운데 어제 서울지법은 권 전 고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 한후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의원에 대해 벌금 5백만원에 추징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그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위해 양심고백을 한 점이나 청렴성등은 인정되지만 실정법을 위반한데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여기서 우리는 라 퐁텐의 우화를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정치자금에 관한 한 사자왕이나 여우나 노새나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몇천억원씩을 챙겨 비자금의 원조(元祖)가 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씨에 이어 문민정부든 국민의 정부든 실정법을 어기지 않고 정치자금을 조성한 경우를 본일이 있는가? 따지고 보면 권노갑 고문 역시 호가호위(狐假虎威)가 통용되는 우리 정치 풍토에서 암묵적 관행을 실행한 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하물며 김근태 고문의 양심고백에 이르러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풀을 뜯어먹은 죄'로 희생물이 된 가련한 노새의 신세일뿐 아닌가.

김의원은 재판부의 선고직후 소감을 밝히면서 '제가 선택한 길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길이고 희망의 길이라고 믿었기 대문에 양심고백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국민들의 마지막 판결을 받겠다'고도 했다.

'조조'가 쏜 화살을 '조조'에게

지금 노새를 향해 일제히 '유죄'를 외친 짐승들이나 희생물로 선언한 늑대의 심판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박수 소리가 정치권에서 더 요란하게 들려서는 안된다. '조조(曹操)가 쏜 화살이 조조에게 되돌아 오듯' 언제 그 '유죄'의 올가미가 자신에게 씌워질지도 모를 정치인이 어디 한 둘인가? '민중이란 무지(無知)할지는 몰라도 진실을 꿰꿇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한 사람은 마키아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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