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화요일은 제40회 저축의 날이다. 우리 전라북도에서는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태도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실천한 공로로 저축의 날을 맞아 14명의 도민이 국민포장을 비롯한 각종 표창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분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사람으로 치자면 불혹의 기간이 지난 뜻깊은 기념일이지만 최근의 경제상황을 돌아보면 저축의 날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앞선다. 먼저 금리를 보면 사상 유례 없는 저금리 기조의 지속으로 은행의 수신금리는 3%대까지 하락하였으며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실질금리는 제로수준에 가까워 적절한 저축유인이 제공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해 30%대를 밑돌며 1983년 이후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던 저축률이 금년 상반기중에는 다시 상승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것도 실상은 그 내용이 부실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카드 대출 등 가계부채 증가에 힘입어 높은 신장세를 보였던 소비가 올해는 정부의 가계대출 급증 억제 정책에 따라 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년에는 빚을 내 소비하고 올해는 그 빚을 갚느라 저축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수신금리는 낮고 소비위축으로 경기회복 마저 지연되고 있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축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경제학적으로 저축은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번째로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저축은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한편 소득은 소비와 저축으로 나누어진다. 주어진 소득하에서 소비와 저축은 상충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소비량이 현재의 만족 또는 행복과 비례한다고 하면 저축을 늘린다는 것은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여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절대빈곤의 상황에 있을 때에는 현재의 만족을 포기해서라도 저축을 늘림으로써 투자재원을 마련하고 성장동력을 높여 소득을 증가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했다. 40년전 저축의 날이 지정되고 국가적으로 저축을 독려하게 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거시경제적 목표 달성이라는 취지에서의 저축의 날의 의미는 오늘날 많이 퇴색했다. 물론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 2만달러,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그러나 자본이 수익을 좇아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구촌 시대에 투자재원을 현재의 강요된 희생을 바탕으로 한 국내 저축만으로 조달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수익성 있는 투자가 있다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투자부진도 수요 둔화, 생산비용 증가 등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성 감소가 그 원인이지 투자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결국 오늘날 저축의 의미는 미시적, 또는 개인적 의사결정이라는 두번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최근 개인들의 무절제한 소비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부작용을 일으키는가를 목도했다. 자신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무계획한 소비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카드사의 부실대출이 늘어나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또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가족이 자살하는가 하면 금융기관 현금탈취나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빈발했다. 개인 사정에 따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없지 않았겠으나 자신의 재정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절제된 소비와 저축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는 생활태도를 견지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최근의 경기회복 지연은 현재의 소비부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넘어선 과거의 과잉소비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장 효과를 보자고 다시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보다 긴 안목으로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와 저축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개인생활의 안정이라는 저축 본연의 목적은 물론 경기 안전판이라는 소비의 경기안정 기능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최성주(한국은행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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