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MBC 라디오를 틀면 「다큐먼터리 격동 50년 - 대우 침몰을 막아라」가 방송된다.
그런데 며칠 전 이 특집 프로의 담당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왔다.
대우그룹이 침몰된 배경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사람에게 직접 듣고 싶다는 얘기였다. 나는 기꺼이 인터뷰 요청에 응하기로 하였다.
먼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나 사이의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항간의 소문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5대 재벌 회장 중에서 가장 가까웠던 분이 김우중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시절에 5대 재벌 총수중 유일하게 김우중 회장을 제일 많이 만났다고 회고하였다. 그것도 그분이 만나자고 요청하면 언제든지 만나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한 때문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대우그룹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한 방안을 폭넓게 상의하였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5대 재벌은 98년 말까지 자율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통하여 부채구조를 개선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5대 재벌 스스로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5대 그룹 중에서 대우그룹의 자구계획 이행 실적이 가장 부진하였다.
그래서 외국 금융기관들은 물론 국내 금융기관들까지 대우그룹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룹의 자금 사정은 계속 악화되었다.
김우중 회장은 정부가 금융기관들에게 대우그룹을 도와주도록 지시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이런 지시를 하는 날에는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국내외로부터 쏟아질 상황이었다. 바로 IMF 사태의 주범이 관치금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하여 우리는 서로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서 나와 경제장관들은 김우중 회장이 대우자동차를 살리는 방향으로 그룹의 자구노력을 집중해 준다면 대우자동차는 살릴 수 있다고 권유하였다.
아예 삼성자동차까지 인수해서 대우의 생산 규모를 늘리면 현대 자동차와 함께 한국 자동차 산업의 양대 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김우중 회장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99년 4월에는 대우자동차 팀이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하여 현장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우차와 삼성차의 통합 시도도 무산되고 말았다.
김회장이 삼성 측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우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회장이 청와대로 찾아오면 여러 차례 직접 만나주셨고 내가 배석하기도 하였다.
다른 재벌 총수들과는 거의 없었던 일이었다.
섬유회사 월급쟁이에 불과했던 김우중씨가 재벌 총수까지 된 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신화와 같은 것이다.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월급쟁이도 재벌 회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성공 사례였던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유명한 저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읽혔고 그 결과로 한국인들이 세계화의 비전을 갖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분의 실패는 재벌 기업의 무리한 확장경영과 회장 1인 중심의 불투명한 경영시스템이 정보화와 글로벌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쓰라린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이제 김우중 회장 중심의 대우그룹은 해체되었지만 자동차, 조선, 건설, 전자 등 과거의 대우 계열사들이 채무조정이나 외국인투자를 통하여 재무상태가 안정되고 임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봉균(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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