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5년 전에 IMF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온 국민이 걱정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온 국민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요인이 기업들의 불법적인 회계처리와 불투명한 경영구조 때문이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정치위기도 불투명하고 불법적인 정치자금에서 촉발되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주요 재벌기업들이 재벌총수 1인 지배 체제하에서 분식회계를 예사로 해왔기 때문에 시장의 신뢰를 상실하였던 것이다.
한국정치를 이끌어 왔던 주요 정당들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1인 보스중심 체제하에서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 정치위기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 것이다.
우리는 5년 전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선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반적인 제도개혁을 단행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정치위기의 극복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선결과제인 것이다.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한 예금계좌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 후원금을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를 선관위에 정직하게신고하고 그 내용도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한국정치의 현실은 정치자금 기부자의 명단을 공개할 경우에 후원금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돈을 적게 쓰는 정당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각 정당이 지구당 폐지론에 합의한 것이다.
지구당 운영비를 절감하더라도 선거를 치르는 데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것이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이기 때문에 선거운동 방식도 개혁되어야만 한다.
한 예로 합동연설회 같은 것은 돈을 들여서 청중을 동원하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아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선거운동은 TV 토론이나 인터넷 홍보 방식이 더 유효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경비는 모두 선관위가 부담하자는 것이 선거공영제 실시인 것이다.
SK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대선자금 전반에 걸친 수사를 펴고 있다. 매일 신문을 보면 불법 정치자금 기사가 터져 나오기 때문에 국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5년전 재벌들의 분식회계가 터져 나왔을 때 국민들이 분개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고 세계인들은 한국 사람들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저력을 지닌 국민이라고 칭찬하였다.
지금의 정치 위기도 정치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면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용서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오늘의 정치위기를 극복하고 낡고 부패한 정치를 새롭고 깨끗한 정치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제도개혁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치자금법을 비롯해서 선거법, 정당법 등을 빨리 수술하고 그 토대 위에서 내년 총선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 스스로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이제부터 변화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도 지난날의 잘못을 질책하는데 머물러서는 안된다. 각 정당이 정치제도 개혁을 제대로 하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개혁에 앞장서는 정당과 정치인을 성원해 주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관행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경제위기의 원인이 기업인들의 잘못뿐 아니라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정치의 위기 상황도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돈을 쓰지 않는 깨끗하고 경륜있는 정치인을 국민들이 뽑아 주어야만 한국정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돈을 풀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낡은 정치인들을 물갈이 시키지 않으면 정치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정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지금 한국을 또다시 주시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의 틀을 만드는데 성공했던 한국 국민들이 정치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적 혼란 속에 파묻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인들이 정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국민이라고 확신한다.
/강봉균(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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