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최근에서야 '얼짱'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TV나 다른 매체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어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국회 의원들 사이에서까지 얼짱 운운하는 얘기를 얼핏 듣고 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얼이 빠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가?' 내심 그렇게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손녀에게 물으니 그게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최고로 예쁜 얼굴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신세대들이 즐겨 쓰는 말답게 어감도 재미있고, 뜻도 함축적으로 그럴싸하다. 따지고 보면 요즘 세태를 이만큼 잘 반영하는 말도 없다싶다. 얼짱이 있는데 몸짱이 없겠는가. 최근 40대 주부의 이른바 '몸짱' 아줌마의 주가가 치솟아 수 천만 원대의 CF를 계약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10대 얼짱 신드롬에는 예쁘다 외에 다른 것이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예쁜데 뭘 더 바래?” 그저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위험한 등식에서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어쨌든 얼짱문화의 모태가 된 것은 이 사회를 주도하는 기성세대이다. 젊은 세대들이 불나방처럼 외모에 목숨걸게 만들도록 내몬 결과가 아닌가...
입시지옥을 거쳐 취업전쟁을 치러야하는 청년세대들은 면접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라도 한다. 자신의 외모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성형수술을 통해서 자신의 개성을 저버리고 그야말로 바비인형같이 매끈하고 잘생긴 성형 미남 미녀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아는 사람 중에 수능 끝난 손녀를 성형 수술시키고 온 사람 얘기를 듣다보니, 놀랍게도 그 날 거기 모인 열 명중에 일곱은 성형을 이미 한 사람이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성형을 할 예정인 사람들이었다. 성형은 이제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제 야인시대도 가고 무인시대도 가고 얼짱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한 듯도 하다. 그런데 너도나도 미남미녀이다 보니 바비인형처럼 예쁘긴 한데 고유한 개성이 희박해서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예쁜 것이 평범해서인지 오히려 일부 광고전략은 못난이모델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 모 휴대폰 광고처럼 휴머니티를 내세우기도 한다. 모두가 얼짱에 열광하고 선호하는 추세와는 반대로 일부 영화.TV.광고 쪽은 오히려 독특한 캐릭터와 개성을 추구하는 것을 보니 외모에 편중되지 않은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다행이란 느낌마저 든다.
예전에는 진선미라 하여 외모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참됨과 선함 아래에 두었으며, 사람이 내면에 갖추고 있는 덕목과 기품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얼굴이 예쁘지 않은 사람도 다른 덕목으로 평가받을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 예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가까이 지내던 이매창이라는 유명한 기생이 있었는데 그녀 또한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었으나 그녀와 한 번이라도 만나서 얘기를 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시서에 능하고 학문이 깊었으며, 누구를 막론하고 대화가 질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 인품과 매력이 얼짱 운운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화왕(한국부인회 익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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