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장석(匠石)이라는 목수가 살았다. 하룻날 그가 길을 가는데 사당 하나가 보였고 그 옆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이 나무가 얼마나 컸던지 줄기의 둘레가 백 아름은 되었고 높이는 산을 굽어 볼 정도였다. 이 나무를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장석은 이 나무를 쳐다 보지도 않은채 그냥 지나쳤다.
뒤를 따르던 제자가 이를 의아하게 여겨 장석에게 물었다. "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을 따른 이후 이처럼 큰 나무를 본적이 없는데 어찌 선생께서는 쳐다 보지도 않으십니까?”장석이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아라. 저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이니라”
은퇴한 老政客과 큰나무
장석의 설명은 이랬다. '저렇게 큰 나무로는 배를 만들어 보았자 가라 앉을 것이다. 관(棺)을 만들어 보았자 곧 썩을 것이다. 문을 만들어도 진이 흐를것이고 기둥을 만들어 보았자 벌레가 먹을 것이니 아무것도 취할것이 없는 나무다. 어찌 그러한가. 저 나무는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까닭에 저렇게 오래 산 것이다'-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이 고사(故事)를 감히 은퇴한 노정객 김종필(金鍾泌)씨에게 비유하는 것은 큰 결례일지 모른다. 아무렴 이 나라 정치사에서 DJ·YS와 함께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그를 뉘라서 감히 폄훼할 수 있겠는가. 정치 입문이후 40여년 동안 권력의 핵심에서 부침을 거듭해온 영원한 2인지아니 그의 정치 역정을 '쓸모없는 큰 나무'로 깎아 내리는것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정치 일선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것은 역으로 그 누구에게도 확실한 '쓸모'를, 공고하게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역설(逆說)이 성립되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결과 남은 정치인생을 '석양을 붉게 물들이는데' 쏟는 대신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뿐'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절구(絶句)를 되새김질하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지만...
일찌기 로버트 그린이라는 사람은 '권력이란 근본적으로 도덕과 무관한 것이며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속임수와 잔재주에 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JP가 과연 그러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도 결국 시대의 변화와 개혁의 거센 풍랑을 이겨 내진 못했다. 그의 역할이 종지부를 찍은 지금 우리 정치는 한단계 성숙의 출발점에 서 있다. 상생과 화합, 개혁과 진보를 외치는 정치 신진들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봐야 할 때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절실한 것이 '쓸모있는 큰 나무'를 보는 일이다. 당랑거철(螳螂拒轍)처럼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던 이인제(李仁濟)의원이 구속된 지금 과연 우리 전북의 큰 나무는 누구인가. 미루어 짐작컨대 열린우리당의 정동영(鄭東泳)전 당의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행로가 '쓸모있게 될지' 아니면 끊임없는 '가지치기'에 시달려 크지도 못한채 잔나무로 그칠지는 무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다만 기대할 수 있는것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란 마음뿐이다. 그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지켜보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최대 관심사다.
/김승일(언론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