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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지혜의 거리'를 만들자

사무실 인테리어를 한옥풍으로 바꾼 사무실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사무실에 한지 벽지를 바르고 고가구와 8폭 병풍으로 멋을 내면 훌륭한 ‘한국문화 체험 공간’이 된다는 것.

 

아파트의 방 한칸을 한옥의 사랑방처럼 개조하거나, 강한 햇빛이 창호지를 통과하면서 은은해지도록 4분합문으로 교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나무와 종이, 천연섬유를 사용하니 몸이 편하고 마음이 정갈해진다고 한다. 한마디로 ‘취향’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취향이나 미의식은 참으로 끈질긴 것이다. 그것은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문적 지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제 마음에 어울린다’는 뜻이다. 서구문명의 세례 속에서 기억상실에 빠졌던 한국인들이 ‘기억 속의 심상’인 전통을 재발견하는 일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전주가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자부하는 것은 자랑스럽고 소중한 일이다.

 

전주는 ‘멋’의 고장이다. 그런데 이 멋은 겉멋이 아니다. 조지훈은 ‘멋의 연구’에서 ‘진선미의 합일을 지향하는 인문적인 한국의 가치관념이 바로 멋이다. 멋은 그 근원이 정신미에 있다’고 말했다. 새롭게 주목받는 ‘풍류’도 최치원 선생이 말한 것은 유불선 3교를 아우르는 수준높은 정신교육, 국가 경영의 인재를 길러내는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말한 것이지 결코 음풍농월이 아니었다.

 

따라서 멋의 고장 전주는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으로 스쳐가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옥마을도 한옥 그 자체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옥 ‘그 속에 담긴’ 가치를 팔아야 한다.

 

필자는 전주에 ‘지혜의 거리’를 제안하고자 한다. 북경의 ‘유리창’이나 동경의 ‘간다’와 같은 고서점의 거리를 전주에 만들자.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내세우는 나라에 고서점의 거리 하나가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서울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전주가 해보자. 완판본의 고장 전주는 한때 세계적인 출판의 도시였지 않은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민관협력기구를 만들고 학계의 어르신들에게 편지를 보내 평생 모은 장서를 기증해주시기를 부탁드리자. 중국의 항주대학에서 동양사의 대가 전해종 교수의 장서를 ‘문고’를 만들어 모시는 가운데, 국내의 노(老)교수는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서 근으로 무게를 달아 장서를 처분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그분들의 학문적 업적을 전주가 모시고 분야별로 집적하여 ‘작은 박물관’들을 만들자. 고서점이 정겹게 들어선 ‘지혜의 거리’에서 사시사철 동양학에 관한 수준높은 세미나가 열리는 ‘정신문화의 도시’ 전주를 만들어가자.

 

일본의 교토는 ‘교세라’라는 세계적 기업과 교토대학이 있어서 품격과 아름다움을 지켜왔다. 전주가 교토와 같은 품격 높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함께 지역대학이 동양학의 메카가 되어야 한다.

 

동양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로 재창출되는 노천광맥과 같다.

 

21세기를 주도할 디지털콘텐츠도 정신문화의 광맥에서 굴착되는 것이다.

 

전통문화중심도시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토속성과 세계성, 전통과 현대가 경계를 허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혜의 거리’가 전략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두엽(예원예술대학교 산학협력단장)

 

이두엽 교수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KBS - TV 프로듀서를 거쳐 (주)굿모닝아시아 대표이사를 지냈다. 최근 전라북도 문화관광비전연구협의회 회장을 맡았으며, 국립극장?국립방송(KTV)자문 위원, 전주시 지역혁신협의회 문화영상분과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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