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선지자 나단이, 유대 왕 다윗이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우연히 보고 반하여 불러 동침을 하고, 그 남편인 우리아 장군을 부러 맹렬한 싸움터에 보내 앞장서게 해 죽게 한 일을 꾸짖으며 비유한 이야기다. 다윗은 부자의 파렴치에 크게 노하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지라” 했다. 아직 제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나는 10년 전 한일장신대학교에 임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는 민중신학자인 총장이 진보적인 학자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 총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나는 그 사이 이미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동지가 된 동료교수들과 더불어 세상을 논하며 교육에 힘을 쏟았다.
우리 대학은 입학정원 4백 명의 아주 작은 대학이다. 대학의 규모가 꼭 커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교수의 자질도 대학의 크기로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학업의 기회를 놓쳐 뒤늦게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위 만학도들이 많다. 나는 이 대학 저 대학 기웃거리지 않고 오로지 이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며 성심껏 가르쳤다. 서울과 수도권의 큰 대학들로만 가려고 절치부심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소박한 생각은 타의에 의해 곧 좌절될 것 같다. 파도가 일고 비바람이 치며 폭풍우가 몰려오더니 이내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 ‘대학쓰나미’의 진원지는 교육부다. 편입학의 확대는 그 출발점이었다. 이때부터 이미 지방의 사립대학들을 죽이고 서울과 수도권의 큰 대학들과 국립대학만 남기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누가 큰 대학만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가? 오로지 미국식 기준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누가 만들었는가? 대학이 경쟁력으로만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가?
최근 무지 열 받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 과 학생 하나가 전북대에 편입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빠져나갈 때도 덤덤했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이래도 되는가? 재학생 2만 명의 덩치 큰 국립대학이 구조정의 노력은 않고 특혜 이점을 앞세워 작은 사립대 학생들을 빼가다니!
전북대의 이번 편입학생 수는 7백 명에 이른다. 이는 우리 대학 뿐 아니라 전북지역 대학들을 블랙홀 속으로 빨아들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규모다. 사립대는 생사의 기로에 있는데, 국립대는 그 아사리판에서 학생들을 빼내가고 있는 것이다.
다윗 왕이 권력을 이용하여 남의 여자를 빼앗은 행위, 수많은 소와 양을 보유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유일한 재산인 한 마리 양 빼앗아 자기 손님을 접대한 행위와 같은 파렴치한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과 벼룩의 간을 빼먹는 국립대의 탐욕은 당장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동민(한일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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