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교 전북기능대 교수
하늘을 훨훨 날고 싶다던 어느 장애우의 산문고백을 읽었다. 그는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어제 있었던 희망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없더라는 얘기였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서글퍼지는 마음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지만, 이제는 사방에 안개를 드리운 채 지낸다 했다. 그러나 불편한 거동으로 인해 쉬이 걷히는 안개를 막을 수 없어, 온몸이 상처투성이라 말하는 그의 고백에서,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사방 오리(五里)에 걸쳐 안개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장해(張楷)라는 학자는 세상에 나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 당시 배우(裴優)라는 자가 있었는데 3리 밖에 안개를 일으킬 수 없어 장해의 제자로 들어가려 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한다. 그 후 거만한 배우는 안개를 일으켜 도둑질 로 체포되었고, 그 기술을 장해에게서 배웠다는 거짓고백에 그가 2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얘기다.
요즈음에 배우(裴優)가 있었다면 거짓이 더욱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황당한 일들이 꼬리를 물어 거짓의 소리가 더욱 커지게 되어, 장해(張楷)의 진실은 주눅이 들어 두꺼운 천으로 앞가림을 하거나, 그 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이중섭의 그림이 하늘에서 수 백점이 떨어지듯 나타났다. 그 진품 여부가 안개속이다. 실패한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은 있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장애인 우대정책, 학교폭력대책, 식품위생대책, 일부 환경대책, 특히 전북의 최대 현안인 새만금 사업이 92%의 공정 앞에서 중단되어 있는데, 26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전북출신 정치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목적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현안사업의 예산확보를 위한 모임이라 했지만 왠지 씁쓸하다.
혹시 도 의회주최 정책간담회라 마지못해 나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날의 모임 결과는 전북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적극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얘기가 아니던가. 언제부터 호남권의 중심이 광주가 되었는데도 소극적이었던 전북출신 정치인들, 단 한번 모여 위성도시로 전락할 수도 있는 더부살이를 면하리라 생각할까 염려가 된다.
책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주머니 속에 동전 한 푼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하찮은 동전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현재 여권의 실세이면서 속 시원하게 전북을 향한 외침하나 내지 못하는 그 사람들, 선거 때만 되면 땅바닥도 마다하지 않고 넙죽 엎드리는 그들은 누구인가. 관원이 되어달라고 귀족이나 황족들이 찾아와도 그럴 자격이 없다고 거절한 장해(張楷)인가 아니면 사방 3리 안에 안개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으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여 도둑질을 하다가 체포되었던 배우(裴優)인가.
아무튼 세상사가 오리무중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전북의 좋은 식당 놔두고 서울에 있는 식당에 자리를 마련한 도의회나, 이를 받아들인 그들이 깨우치지 않고는 전북의 미래는 오리무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자꾸 허공을 향해 전북사랑을 외칠수록 세상은 더욱 안개속인 것이다.
/이한교(전북기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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