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서울 출입국관리 사무소는 국적을 포기하려는 자(者)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루 평균 1명이던 국적포기자의 수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하루 평균 30명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100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국적포기 신청이 급증한 것은 올 6월 초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정 국적법 때문이다. 특히 신설조항인 제12조는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는 군복무를 마치거나 면제처분을 받아야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모의 외국일시 체류 중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남자가 병역의무를 마치기 전에는 한국국적을 버릴 수 없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군대를 가거나 아니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적 포기자가 급증했는데, 서울 출입국 관리소의 발표 자료를 보면 10일까지 국적 포기자 386명중 97%가 미국을 자신의 모국으로 선택했으며, 98%가 남성이었으며, 99%가 20세 미만이었다. 그리고 이들 부모의 직업이 대부분 교수, 연구원, 상사 주재원 등이었다. 이 통계를 보면 왜, 어떤 사람들이 국적을 포기하는 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마음이 답답하다.
첫째, 이들이 한국국적을 포기하는 이유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99%가 20세 미만이며 이중 98%가 남자이다. 둘째, 이들 부모들이 한국의 여론 주도층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 미국 편향적이고 친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식이 미국인인데 부모가 누구 편을 들겠는가? 97%가 미국을 모국으로 선택했다는 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한국 지식인중에 ‘미국사람 보다 더 친미적인 발언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대개 한 사회가 성장발전해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 인사들이 모범적인 행동, 즉 사회적 특권에 따른 도덕적 책무(noblesse oblige)를 이행해야 한다. 그래야 일반 국민들도 그들을 따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19세기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이 그렇고 현재 미국이 그렇다. 세계대전 기간 중 수많은 영국 귀족들의 자제는 전쟁터에 나서 불귀의 객이 되었고, 82년 아르헨티나와 전쟁 때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아들인 에드워드 왕자는 헬기조종사로 최일선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왕위계승 서열 2번째의 왕자가 싸움터에 나가는데 어떤 영국의 젊은이가 전쟁터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한국사회의 많은 지도층인사들은 권리에만 민감하고 마땅히 이행해야할 의무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총리를 비롯 수많은 장차관 등 고위관리들이 자녀병역, 부동산 투기 문제 등 도덕성과 연루되어 자리를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로만 애국, 애족을 외쳐 온 것이다.
나라 일은 그렇고 우리 전북은 어떤가? 소위 전북발전을 말하고 애향을 강조하는 전북의 지도급 인사들은 ‘도덕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서울에 거주하면서 가끔 전북에 내려와 전북의 단물만 빨아먹는 인사는 없는가? 전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전북애향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람은 없는가? 전북 사랑을 말로만 하지는 않는가?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공허하다. 이제 전북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찾아야 할 때다.
/송기도(전북대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