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자치입법으로 제정하는 조례는 지방의 법으로서 지방자치 실현에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 실시 초기에는 법률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해준 필수적인 사항조차 제대로 제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중앙부처가 조례 표준안을 만들어 각 지역에 배포하면 자치단체 명칭만 덧붙이는 식으로 제정하곤 했다. 그래서 지역마다 거의 똑같은 조례들이 있다. 오히려 조례가 각 지역을 획일화하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조례는 지역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사회복지관련 조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약하기 짝이 없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지난 ·98년 고용·실업대책전북도민운동본부가 전라북도저소득자및실직자지원에관한조례(안)을 전라북도 의회에 청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의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하여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미료로 처리되었다. 실질적으로 거부되었던 것이다. 타 지역에도 전례가 없고 재정이 부담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자치시대라고는 해도 우리지역 특유의 조례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자치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런가하면 전북의 14개 시·군 중 순창군을 제외한 13개 시·군과 전라북도에는 공공시설내의매점및자동판매기설치허가에관한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거의 똑같은 조례들이다. 이 조례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공공시설 내에 매점이나 자동판매기 설치를 허가해주거나 위탁 운영케 하는 취지의 조례이다.
또한 장애인복지법의 규정과 동일한 법조문이 노인복지법과 모·부자복지법에도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노인, 모·부자가정 모두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각 대상층을 망라하여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선정기준을 정하여 조례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행 조례는 장애인복지법만을 근거로 하여 저소득 노인과 모·부자가정은 완전히 제외시키고 있다. 게다가 자동판매기 운영권 등을 허가 또는 위탁해주고 나서 그것이 진정으로 허가 또는 위탁받은 장애인이 운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사후관리 규정조차 없다. 장애인복지라기보다는 생색에 불과하다. 이건 복지도 자치도 아니다.
최근 새만금 지지단체에 대한 지원을 조례와 보육조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학교급식을 지원하는 조례도 WTO 규정을 이유로 거부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 지원을 위한 조례들도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항들을 조례로 제정하고 또한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단체장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조례제정이 저지되거나 편향적인 조례 제정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실시 10년을 지나면서 이제는 합리적인 내용을 담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조례를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역이 지역답지 않겠나?
/윤찬영(전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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