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주위 사람들에 이끌려 ‘친절한 금자씨’를 봤다. 그런데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상영시간 내내 거친 하품과 기지개로 옆 좌석의 관객에게 실례를 범했다.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죄송하다. 영화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그 엽기적인 장면들과 황당무계한 구성을 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의 분노는 이내 허무로 변했다.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 이름있는 감독과 배우의 영화를 봤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떨떠름한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모 방송사 음악프로 생방송에서 출연자가 알몸으로 춤을 춘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밤 인터넷으로 확인한 후 기분이 참 더러워졌다.
왜 이렇게 세상이 엽기적으로 돌아가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엽기적인 살인행각으로 온 국민을 공포와 분노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 사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말이다. 이런 걱정은 사회과학도의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랬으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이러한 엽기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을 법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도청사건이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치사스러움의 극치인 도청을 통해 정적들과 저항세력들을 탄압하고 제거했었다. 이러한 짓은 기본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참으로 야비하고도 변태적인 짓이다. 한마디로 엽기 그 자체이다. 도청이라는 것은 일종의 관음증이라 하겠다. 타인들의 성적 행동을 몰래 훔쳐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즐기는 병리적 현상이 관음증다. 이것은 변태적인 성도착증이다. 국가 권력기관이 관음증과 같은 작태를 지속적으로 저질러 왔다니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게다가 도청 테이프에 들어 있는 내용 또한 얼마나 변태적이고 엽기적인가? 거대자본이 돈으로 정치권력을 매수하고 언론을 농락하는 것 또한 등 뒤에서 민주공화국의 심장을 칼로 찌르는 것 이상으로 야비하고 잔인한 짓이다. 이것이 바로 돈을 무기로 저지르는 정치적 변태이며 엽기이다. 이제까지 이런 엽기적인 인간들이 이 세상을 움직여 왔다고 생각하니 세상 일이 다 부질없이 보인다. 허무해진다. 생방송에서 옷을 다 벗어 제치는 노출증 환자들 정도는 야단칠 가치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정치적 노출증으로 국민들을 혼란케 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되는 것이 곧 엽기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합리적이거나 공동체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인 욕망과 감각의 노예가 될 때 발생한다. 일제의 잔재와 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사회적인 양극화를 극복하는 개혁을 완수할 때 이런 병리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와중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엽기적인 아니 허무한 연정타령은 이제 그만하고 진정한 개혁을 위해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윤찬영(전주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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