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깃발이 드디어 내려졌다. 거만하게 펄럭이던 깃발은 땅위로 내려오자 이내 축 처져 주민들에 의해 갈갈이 찢겨졌다. …황색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하면 황토흙벽이 무너졌고, 공포에 질린 아이들은 악을 쓰며 울어댔다. 미 공군의 공중폭격 훈련을 알리는 이 황색깃발은 주민들에게는 저주의 깃발이나 다름없었다.-
CBS 노컷뉴스는 2005년8월12일 오후2시의 경기도화성시우정읍매향리 모습을 이렇게 그려가기 시작한다. 1951년부터 쿠니사격장이란 이름이 붙어 54년동안 미 공군의 폭격을 받아온 ‘매향리 사격장’이 이날 폐쇄되면서 황색깃발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다.
깃발을 내리는 주민대책위원장 전만규씨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지난날 황색 깃발을 찢었다 하여 군사시설보호법위반과 기물손괴혐의로 구속됐던 그 사람이다.
그동안 주민들이 겪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폭과 불팔탄사고로 12명이 죽고 15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격이 시작되면 통화중이던 전화소리도 안들렸다. TV도 안나오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도 악을 써가며 이야기해야 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의 청력은 일반인에 비해 20데시벨정도 낮다고 했다. 폭격때 일어나는 섬광으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수면장애를 겪고 자연 유산율이 20%나 된다고 했다. 용케 태어난 젖먹이들은 폭발 소리에 경기를 일삼았다. 매향리 앞바다 농섬은 폭격으로 50년동안 크기가 3분의 1로 줄었다. 그건 저주의 땅이었다.
그 쿠니사격장이 다른곳 아닌 전라북도로 옮겨왔다. 군산시 직도, 군산항에서 뱃길로 60Km. 필자와 민주당 당직자들은 지난 4월 5일 이 섬을 찾아가 현장을 살펴본적이 있다. 언제부터 폭격이 시작 됐는지 3만7천평정도 크기의 이 섬에 이미 생물은 없었다. 깨진 바위조각, 돌부스러기, 여기 저기 널부러진 불발탄들, 코를 찌르는 화약냄새… 있을법한 갈매기 한 마리 없었다.
우리는 섬 중심부에 무궁화 60그루(해방 60주년을 말하고 싶었다)를 심고 폭격 중지를 호소하는 성명을 낭독했다. 나라꽃인 무궁화가 한그루라도 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그날 그렇게 심은 무궁화는 계속된 폭격으로 갈갈이 찢겨 모두 죽어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미국의 도움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폭격훈련장이 없을수는 없다. 우리가 서운하고 더 나아가 속 쓰리게 생각하는 것은 그게 있어야 하는곳이 왜 하필이면 전북이냐다. 전라북도는 다른 지역에서 결사반대하는 기피시설이나 옮겨놓는 그런데냐다. 그런 기피시설을 수용해도 너그럽게 넘어갈 만큼 제대로 대접이나 받고 있느냐다.
이 정부는 입만 열면 균형발전을 노래하지만 다 아다시피 전북은 소득?발전정도에서 전국 꼴찌다.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런 전북이 쿠니사격장 수용과정에서 반대 목소리 한번 본 좋게 내본적이 있는지, 대신 다른 무엇이라도 얻어낸게 있는지 하는 대목이다.
/오홍근(민주당 도당위원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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