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향(전북대 교수)
주변에서 만나는 우리 지역이 아닌 곳의 사람들에게 전통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시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래서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기와지붕도 전주의 것이 보다 전통적이고 우아한 것같고 임립한 아파트 숲도 푸짐한 인심이 담긴 한식 밥상이나 막걸리 집을 떠올리면, 경기전과 그 주변에 조성되어있는 한옥촌에 대한 기대로 보아 넘길 만하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전통문화도시로서 전주에서 정통성이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전주에는 정말 많은 문화유산이 있는데 무슨 이상한 말이냐고 하겠지만 개발과 활용의 대상으로서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전주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보호하여야하는 문화유산이 어느 것인지 전주의 전통문화를 소리높여 외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경기전 또는 그 주변에서 왁자지껄 판을 벌리는 것이 전통문화의 현대적인 계승이나 그 이미지의 보존에 적절한 것인지를. 아니 지금 태조 어진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또 한해가 지나가지만 태조어진은 아직도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만 바랄 뿐이지만 언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지 기약조차 알 수 없다. 떠들썩하게 벌어진 한차례 난리법석에서 어진전의 건립을 추진하는 그 기민함에 그저 감탄스럽고 그 잽싼 기획력에 감격할 뿐이다. 그런데 그 어진전이 정말 어진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체계와 조직을 갖출 것인지 정말 잠깐이라도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 지역에 있는 넓은 의미의 박물관중에는 학예사가 없는 곳도 있으니 말이다.
태조어진은 보존처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국립 전주박물관이나 전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경기전에 지어지는 어진전에 모셔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할 일이다. 그에 못지않게 또는 보다 더 시급한 것은 태조 어진의 훼손을 계기로 오랜 동안의 방치에서 모처럼 논의의 대상이 된 경기전내 각종 유물들의 보존처리이다. 이들 유물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있으며 보존 처리가 시급한 것인지는 시장판의 장삼이사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에는 절차가 있고 중요한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작업이니 신중하고 신중하게 진행하여야 하겠지만 태조 어진의 훼손을 둘러싼 논의의 촛점을 어진전 건립으로 방향을 바꾼 기민함과 날렵함과는 거리가 있다.
내년 예산을 다루는 정기국회도 끝나가는 이 마당에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조어진을 돌려받고 관련유물을 보존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제 그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전주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문화유산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줄 때 전주에 있는 기와지붕이 더욱 고풍스럽고 아스팔트 포장길에서조차 전통이 묻어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윤덕향(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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