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전북대교수·법대)
1979. 10. 26. 박정희 독재자 피살, 전두환 도당들의 12. 12. 군사쿠데타, 그리고 온통 최루탄 연기 속에서 질식했던 80년의 봄, 그렇게 못다 피고 산화해간 광주의 넋들이 있었다. 그리고 87년 전두환 도배 등을 향한 전 국민적인 항거였던 6월 항쟁이 ‘독재타도 호헌철폐’라는 축약된 상징으로 반쯤의 벅찬 승리를 쟁취한지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6월 항쟁 20돌을 맞아 많은 언론들이 그 성과를 되짚어보는 특집들을 다루고 있다. 대체적인 평가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룩하였으나 실질적 민주주의는 아직 이루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라고 보는 것 같다. 민주화는 진전되었으나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악화되어 민중의 삶의 질은 나빠졌다는 평가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나는 아직 우리 사회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도 제대로 쟁취하지 못한 사회라고 판단한다.
다시금 군인들이 총칼과 탱크를 몰고 거리로 몰려나올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되는 점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룩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법과 제도가 민주화 되어야 한다. 또 다른 민주주의 위기였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국민은 법과 제도를 명실상부하게 민주화시킬 절호의 기회를 여당에게 부여하였다. 그러나 무능하고 저급하며 지리멸렬한 정치인들은 이를 현실화시키는데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마치 민주화 세대들은 무능한 세대인 것처럼 억울한 모함과 평가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 무능한 정치인 덕분에 여·야 모두 폐지하는데 아무런 이의가 없었던 국가보안법 제7조가 시퍼렇게 날뛰고 있고, 오히려 개악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통신비밀보호법 등은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려버렸다. 또한 자칭 참여정부로 명명한 현 정부에서 국민의 참여는 거부되거나 묵살되고 있다. 이미 집권층 내부에서 건전한 비판의 소리는 사라져 버렸고, 비정규직의 서러움과 아픔의 소리는 집권층에게는 그저 불평불만 소리쯤으로 간주되고, 한·미 FTA를 두고 절규하는 농민 등의 몸부림은 세계화에 무식한 농군의 폭력쯤으로 치부되었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법·제도·관행이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요원한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나긴 어둠의 광기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세대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꿈은 부패하고 파렴치한 인간의 탈을 쓴 꼴통 정치군인 등이 물러가면 네모반듯한 집으로 세워질 줄 믿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를 재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결코 이루지 못한다는 뼈아픈 경험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제 입을 다물고 있는 대다수 6월의 심장들이 희망의 연대로 타올라 저 허접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을 선거라는 모래판 밖으로 몰아내고,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그 길이 조국 산하의 곪아터진 피울음을 멈추고 형식적·실질적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는 씨앗이다. 6월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김희수(전북대교수·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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