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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쥐'와 '남대문' - 임명진

임명진(전북민예총 회장)

무자(戊子)년 새해가 열린 지도 닷새가 지났다. 쥐가 근면?다산?풍요의 상징이라 하니, 올 한해 우리 모두 근면하게 일하면서 가능하다면 다산도 이루어서 풍요로운 삶을 누렸으면 하는 기원으로 닷새 연휴를 보냈다. 하도 서로들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하니 올해는 우리 모두 쥐처럼 큰 욕심 없이 근면하게 살다보면 큰 소리로 떵떵거리지는 못할망정 그저 안분(安分)을 챙길 수도 있겠다 싶어 무자년 한 해가 그렇게 ‘조용한 풍요’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연후 마지막 날 남대문 화재 참사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며 이런 소망에 먹구름이 끼었다. 수십 대의 소방차가 품어대는 물줄기에도 아랑곳없이 더욱더 치솟아 오르는 화염과 연기처럼 그 먹구름은 더욱 커져갔고, 마침내 자정을 넘겨 남대문의 지붕이 붕괴되는 장면을 보면서 예의 소망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우리에게 남대문은 무엇인가? 우선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이 크다. 그 상징성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재 가운데 첫째라는 점을 넘어선다. 또 흔히 쓰는 속담으로 ‘남대문 입납’이나, ‘모로 가나 기어가나 남대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다. 겉으로야 ‘주소도 모른 채 사람을 찾는 일’이나 ‘어떤 수단을 쓰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뜻을 다소 조롱하는 투로 표현하는 말이지만, 이 속담에는 남대문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친숙할 뿐만 아니라, 또 한국인의 정신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속뜻이 잠재되어 있다. 그런 남대문이 속절없이 불타버렸다.

 

이제 형해만 남은 남대문을 보면서 우리의 현재의 삶이 그렇지 않는가를 생각해본다. 화염 속에 타들어가는 숭례문(崇禮門)을 보면서 우리의 예(禮)를 생각한다. 또 남대문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생각한다. 그 문에 얽힌 수백 년의 역사적 발자취와 그 문에 서린 전통가치를 생각한다. 그러한 역사적?상징적 가치들이 화염 속으로 소실되었다고는 단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걸 전면으로 부인할 수도 없다는 게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쥐의 해 정초에 남대문 붕괴라! 화재는 언제 어디서고 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남대문인들 영원히 불타지 않을 수 없을 터이지만, 하필이면 쥐의 해 정초일까? 우연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엔 올 한 해 ‘조용한 풍요’를 기원했던 정초 연휴의 소망이 맘에 걸린다. ‘쥐’는 십이지(十二支) 열두 짐승 중 가장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할만하다. 적자생존과 형세판단에 능하며 명분보다는 실익을 앞세울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쥐의 해에 우리나라 전반적 풍토가 실용주의로 흐르는 것도 우연의 일치일까?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 철학기조로 ‘실용주의’를 내세운 바 있다. 최근 서구에서도 한 세기 이전의 고전 실용주의자인 제임스와 듀이를 재평가하면서 이른바 ‘신실용주의’의 기치를 들고 나온 것을 상기하면, 그 점을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 한물간 ‘고전 실용주의’를 복원하는 데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논리만을 앞세우면 자칫 한 세기 전의 낡은 실용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남대문이 상징하는 역사성과 전통가치는 이번 화채처럼 소실될 것이 자명하다.

 

‘실용주의’의 해 무자년 정초라서 남대문 화재는 착잡하다. 그러나 이 화재를 우리에게 실용주의의 폐해를 각성시키는 사건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는 정녕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위안으로나마 그 착잡함을 가라앉혔으면 한다.

 

이제 이런 위안이나마 보듬고 오는 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임명진(전북민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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