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그린 핸드'는 내가 지어낸 낸 말이다. 지난 여름이었다. 뙤약볕에서 어떤 할머니가 잔디밭 잡풀을 뽑으며 뭐라고 중얼중얼하는 것이었다. 좀 이상한 분인가 보다 했는데 가만 들어보니 풀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애야, 미안하다. 좋은 곳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미안하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저도 살려고 나왔는데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는 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놀랬다. 녹색 사랑 할머니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장갑조차 없이 투박한 그 할머니의 손을 '그린 핸드'라고 이름 붙여 경의를 표했다.
내가 만난 또 다른 그린 핸드는 공공기관에 꽃을 보내주는 분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고, 우선 일하는 분들이 즐겁게 일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정성껏 화분을 다듬는 그 손길을 그린 핸드라고 붙여주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이 같은 녹색사랑 마음뿐만 아니라 생명 외경심에 대해서까지도 이 이름을 붙이겠다. 내 어릴 적에 할머니는 닭을 잡을 때면 꼭 나무아니타불을 중얼거리시곤 했다. 왜 그러냐는 철없는 손자에게 할머니는 "닭고기가 맛있으라고"그런다고 말을 흘리셨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퍼덕거리는 닭.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읊으시며, 그 모가지를 움켜쥐느라 힘줄이 돋던 할머니 손을 나는 지금 그린 핸드라고 부르고 싶다.
또 다른 그린 핸드는 오늘 점심시간에 만났다. 모처럼 구두도 닦아달라며 구둣방 아저씨에게 바닥이 떨어진 너덜거리는 슬리퍼를 내밀었다. 본드를 붙이기만 해도 되는데 질긴 실로 야무지게 바닥을 꿰매주었다. 버려도 될 것을 가져온 나에 대한 감사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그의 검은 손은 내가 귀히 여기는 그린 핸드다. 생명도 없는 아니 생명이 다한 것을 살려낸 손이다. 실 값으로 내민 오백원에 쑥스러워 하는 그 아저씨 표정은 그린 스마일이다.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서 그린 핸드를 찾을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는 신의 손과 아담의 손이 닿을락 말락 하고 있다. 서로 움켜쥔 손보다도 그 정도의 간격에 이르는 마음이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그 손도 그린 핸드라 이름 붙이고 싶다. 미술해설서 가운데 이설을 끄집어 내 재미 보는 책들에서는 이 그림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신의 손길을 인간이 받아들이는 장면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신이 인간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값을 뺏어간다. 구원의 손길을 뻗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 주는 두 손을 모두 그린 핸드라고 새겨두고 싶다. 이 그림과 관련해서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기는 작가 미켈란젤로의 열정이다. 조그만 그림을 그리느라 천정에 매달려 땀 흘리는 작가에게 친구가 말했다. "누가 보고 알겠느냐 대충대충 해치우라". "내가 안다"고 하며 아랑곳없이 열정을 쏟아 작가는 정성을 다했고 오늘 날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마음속에 일하는 동기를 확실히 지니고 추진하면 성공한다는 의미로 '미켈란젤로의 동기'라는 격언이 생겨났다고 한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일하거나 동기의식 없이 떠밀려가며 일하는 요즘 적당주의 세태에 되새겨볼만한 대목이다. 미켈란젤로의 페인트 뭍은 손은 그린 핸드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그린 다이아몬드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한다. 그린 핸드는 마음이다. 그린 핸드가 아름답다. 그린 핸드는 이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이다. 녹색을 사랑하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 도움을 주고받거나,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열정파, 그들이 바로 이 시대의 정신이고 힘이다.
/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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