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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전주 상념 - 김영원

김영원(국립전주박물관장)

전주를 처음으로 나에게 이어준 고리는 박물관이었다.

 

국립전주박물관으로 발령이 난 1993년 가을, 터덜터덜 혼자 박물관 정원으로 들어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외롭고도 서글프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다행히 동료와 함께 발령이 나서, 낯선 곳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됐고 또 한줄기 위로가 되었다. 이때부터 전주, 그리고 전북과의 인연이 깊어만 갔다.

 

대학교수이던 선친(불문학자 金鵬九)은 늘 말씀하셨다. 퇴임하면 전주에 가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병환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못 이룬 그 염원이 곧 나에게서 발현되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그 분은 전주를 무척 좋아하셨다. 한옥이 고즈넉한 거리를 이루고, 음식이 맛깔스러우며, 사람들은 점잖다고 했다. 선친께서 들려준 70년대 전주 이야기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주를 말하라고 하면, 오래된 전동성당, 아직도 조성 중인 한옥마을, 그리고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그려낸다. 특히 전동성당은 고풍古風 속에서 20세기 초의 서양풍을 접할 수 있는 신선한 전통 그 자체이다. 봄의 영화 축제, 가을의 소리 축제도 주목받고 있다. 또 여러 종류의 술이 개발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무주의 머루와인, 부안의 복분자주와 이름도 재미있는 뽕주(오디주) 등은 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애주가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이런 감성과 감각을 즐겁게 하는 음식과 술, 그리고 예술 축제에다가 역사의식과 소양을 보완다면, 전북의 문화생활이 풍요로워짐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여기에는 박물관의 역할이 보탬이 될 것이다. 유적을 조사하고 각종 특별전을 개최함으로써 전북의 역사를 복원해 내는 작업이 그것이다. 특히 며칠 전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출토품들을 보면, 문헌으로는 밝힐 수 없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크게 보완될 판이다. 과연 우리가 찾아내야 할 전북의 역사 문화의 핵심과 원류는 무엇일까.

 

전북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그런데 이후의 역사 유물을 보면, 마한, 백제, 통일신라 말기의 후백제, 고려, 조선 시대에 전북의 고유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필자는 미술사 중에서도 도자사를 전공하는 이유로, 조선시대 도요지(도자기를 만들던 곳)을 찾아 1996년 약 1년간 전북을 구석구석 헤맸다. 그래서인지 전북의 마을들은 속속들이 눈앞에 선하고 정겹다. 다만 몇 군데 훼손된 도요지의 모습은 아직도 안타깝기만 하다.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낡고 구태의연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곧 시들어버리고, 사람이 본능적으로 부모를 찾고, 못 찾으면 풀이 죽듯, 뿌리가 없이는 식물도, 사람도, 도시도 생생하게 발전할 수 없다.

 

이 곳을 떠난 지 10여년이 지난 2008년 10월 늦가을, 박물관은 나와 전주의 인연을 다시 이어주었다. 전북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쓰라는 숙명인 듯 여겨진다.

 

/김영원(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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