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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창조도시를 키우는 막걸리집 - 원용찬

원용찬(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그 날도 막걸리 집은 흥겨웠다. 조기 찌게, 해물전, 고등어조림이 안주로 날라 오고 왁자지껄한 식탁 위로 주전자도 쉴 새 없이 비워지고 있었다. 널찍한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 속에서 한 두 사람 정도는 아는 사람이 있기에 술값도 대신 내주거나 얻어먹기도 하는 막걸리 집은 전주를 가장 잘 상징해주는 풍경이랄 수 있다.

 

한때 전주의 막걸리 집을 씁쓰레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지역경제가 위축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한 집안의 가장 대신에 솜씨 좋은 전주 미향(味鄕)의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직종은 빈 가게에 막걸리 집을 여는 것이었다. 공급은 수요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 점차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시민들의 분주한 발걸음은 또한 막걸리 집을 번창시켰던 것이다.

 

◆ 열정, 관용, 감성은 새로운 잠재력

 

막걸리 집은 전주경제의 우울한 지표이기도 해서 뒷맛은 개운치가 않았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양질전환(量質轉換)이라 했던가. 지금 전주의 막걸리 집은 양적 증가와 더불어 새로운 질적 전환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끓는 물이 일정한 비등점에서 수증기로 전환되듯이 전주도 막걸리집이 군집되면서 지역 공간의 생태계 지형을 새롭게 그리고 있다.

 

물론 전주 막걸리 집이 모델이 되어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구축되는 것이나, 일본의 여성들이 막걸리에 고급색깔을 입힌 수 십 가지의 칵테일을 사랑하는 일도 대단하다. 이제는 전주가 한식산업의 진원지가 되는 과정 말고도 막걸리 집이 뿜어내는 전주의 문화 창조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주 막걸리 집에서 느끼는 새로운 열정, 관용, 혼융, 감성은 우리 지역을 특유한 문화 창조 도시로 이끄는 잠재력이라 하겠다.

 

창조경제를 처음으로 주창한 플로리다는, 창조성과 도시의 조건으로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을 경제성장의 세 가지 모델로 주장한다. 지식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기술은 더 이상 홀로 고독한 천재의 몫은 아니다. 디지털시대의 기술 지식은 쌍방향으로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언제 어디서'(유비쿼터스) 누구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인재는 잘나고 특출 난 사람이 아니다. 플로리다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든 창조적이다." 누구든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기꺼이 맞이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관용정신이 있어야 한다.

 

◆ 서로 연결망 속에서 싹트는 창조에너지

 

도시 공간에서 인적자본의 결합 속도가 빠를수록 경제성장도 가속화된다. 인적자본은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군중이나 다중(多衆)을 의미하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붐비는 수많은 인파는 고객의 취향과 기호, 에스컬레이터로 인도되는 쇼핑길목은 모두가 자본이 우리들의 신체공간을 감시하는 장소일 따름이다. 사람들이 군집하고 스쳐가는 자본의 공간이 아니라 어우러짐의 열린 무대가 있어야 한다.

 

그날도 막걸리 집은 시끄러웠다. 아마도 밀실의 고통을 벗어나 막걸리 광장에서 새로운 세계와 대면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연대의 망을 펼치는 듯 하였다. 전주 막걸리 집에 몰린 사람과 툭 터진 공간은 창조도시의 잠재력과 인간의 경제를 보여 준다. 인간의 경제를 제대로 풀어보면 인(人)·간(間), 즉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어우러지고 흥겨움으로 가득 차고 중간도시의 준(準) 익명성으로 지인을 만나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어준다.

 

농경문화의 보수적이고 가족 공동체 기질이 아직도 남아있는 전주로서 막걸리집의 열린 문화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가볍게 막걸리 한 주전자를 다른 탁자로 선물하는 호혜와 배려의 정신은 전주 막걸리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전주 막걸리집은 지금 음식산업의 범주를 뛰어넘어 창조와 아이디어, 열정, 혼융, 관용을 지역의 새로운 창조에너지로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용찬(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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