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가르치려 말고 치열하게 실력 쌓아야
◆방담 내용
첫 주제는 자연스럽게 시국과 맞닿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울증 때문에 돌아가신 거예요". 김동인 원장이 화두를 꺼냈다.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전북일보에서 지난 24일 봉하마을을 현지 취재했을 때도 많은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 중 하나로 무책임한 언론보도를 꼽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 보도 문제가 곧바로 튀어나왔다. "검찰이 흘리는 대로 언론은 확인하지도 않고 하이에나처럼 써댔다. 상상력을 동원해 마라톤 중계를 했고 도덕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던 노 전 대통령을 부패정치인으로 몰았다. 언론의 역기능이다."최형재 처장의 목소리가 격앙되고 있었다. "대서특필 할 사안이 아니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중계하면 국민들이 잘못 판단한다. 특히 절대적 평가를 해야 하는 데 다른 전직 대통령과 비교하며 상대적 평가까지 했다." 권미양 선생이 거들었다. 권 선생은 전북일보 기자 출신이다. 김 원장이 정리했다. "초자아가 강한 사람은 사회적인 관계에서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죄책감과 무력감, 고통을 느끼고 그가 추구했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최 처장이 덕담을 한다. "지방지의 노 전 대통령 서거 보도는 전북일보처럼 해야 맞는 길이다. 현장에 달려가는 기동성이 좋았고 그 곳에서 전북인을 취재하고 지면에 노 전 대통령과 전북의 인연을 소개한 편집이 돋보였다." 기자들의 귓볼이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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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석 처장이 초반 기선을 잡았다. "전북일보는 의제설정 기능이 부족하다." 순간 눈과 귀가 쏠렸다. 이 처장의 질타가 이어졌다. "전북일보가 전북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의제를 선도해야 하는데 지역에서 뭐 하면 뒤따라가고 끝난다. 맏형신문답지 않다." 침묵이 흘렀다. 소란스러운 막걸리집에서도 분명 침묵의 시공간이 존재하다니.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도지사와 전주시장이 기자회견 하면 모든 신문에 다 난다. 도대체 주장하는 게 뭔가. 너무 많이 (단체장을) 다루는 것 아닌가." 구성은 의원의 폭격이다. "시의원도 중요한 의정활동을 하는데 기자와 친한 의원들의 활동만 뉴스 가치와 관계없이 보도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아니라…막 반박을 하려는 순간) 구 의원이 숨통을 틔워줬다. "전북일보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는 마세요. 의제설정에 대해 말하죠. 최근 '가정의 달 특집'을 보면서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서로 의지하며 희망을 찾아가는 기사는 굉장히 칭찬해주고 싶은 기조였어요." 일순간에 팽팽했던 긴장이 풀렸다. 그것도 잠시. 김 원장의 2차 폭격이 시작됐다. "기자는 좀 불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불편하다뇨??) "기자들을 보면 지연, 학연이 엮여 취재대상하고 다 형이고 동생이던데 욕도 먹고 갈등도 생기고 불편해야 신문에게는 이롭다.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는 본인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저널리스트로서는 아니다. 그래서 기자는 불편한 존재여야 한다는 뜻이다." "옳은 말씀 입니다." 김은정 국장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안봉주 사진부장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져도 이들의 충언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 처장이 전북언론계에 특이한 경험을 했다고 소개했다. "아마 특정 신문의 후원을 받은 행사였을 겁니다. 근데 그 언론사 이외의 기자들이 취재를 와서 문제점만 지적하는 거예요. 취재를 제대로 하면 모르는데 무조건 엉터리 행사다 뭐다 해서 아주 주최측이 난감했죠. 자료를 배포하고 설명을 하려했지만 듣지도 묻지도 않고 가버리는 거예요." 우리 신문도 타 매체의 행사에 배타적이었는 지를 뒤돌아보게 해준 지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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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과 지적은 막걸리 잔 수만큼이나 쌓여갔다. 병 주고 술 준다던가. "다문화가정, 노인, 청소년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각각의 섹션을 만들면 다양한 독자 계층을 포용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처장이 발제를 했다. "저는 교사이자 아이들의 엄마인데 교육이나 생활면 기사를 보면 기획과 알맹이가 부실하고 사진만 크게 나오더라. 객원기자, 청소년 기자단 등을 활용해 자기들의 인생이야기를 담아내면 좋겠다. 그래야 지방신문을 본다." 권 선생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던 최 처장이 방안을 제시했다. "청소년 기자단을 개인적으로 섭외하거나 만나기 힘드니까 관련 단체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억울했는지 김 국장이 대답했다. "우리는 '다문화 가정'에 포커스를 맞춘 기획과 보도를 많이 했고 최근에는 노인 이야기를 다룬 '노노섹션'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주장을 담는 작업은 참 어렵더라." 그러자 김 원장의 마무리 펀치가 터졌다. "설명과 설득을 위해 나온 자리가 아닐 텐데요…"(일동 웃음) 최 처장이 전혀 예상치 않은 제안을 했다. "신문이 많으면 언론도 지자체도 광고주도 힘들어지잖아요. 시민단체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인데 전북일보를 포함한 두세개 신문이 공동 전선을 구축해서 '오늘은 이런 주제, 이런 보도를 합시다'라는 식으로 할 수는 없나요." 김 팀장이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아니, 편가르기를 하자는 이야기인가요?. 일종의 담합으로 비쳐질 수 있는 데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제안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북일보가 다른 신문하고 편짜려면 손해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대중들이 차별성을 느끼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차원입니다. 결국 연합한 두섹 신문 이외에는 광고도 주지말고 기고도 하지말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자는 거지요." 나름대로 유의미한 목표를 지닌 새로운 제안에 서로들 말 잇기가 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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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과 칼럼, 만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북일보의 칼럼과 사설이 너무 보수적이다. 모 신문은 글이 강해서 좋더라. 나 같은 30대가 보기에 전북일보는 딱딱하다. 여성 필진도 상대적으로 적다." 구 의원의 말을 최 처장이 반박했다. "아니다. 40대가 보는 전북일보의 포지셔닝은 잘된 편이다. 무게가 있다. 다만 전략 부재가 엿보이는 데 사설 일부를 외부인사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나?". 전략 부재에 동의한다는 이 처장은 "난 사설보다 칼럼을 많이 본다. 6개월 단위의 칼럼 필진 선정부터 전북일보 로드맵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인생은 치열할수록 건강하듯 전북일보도 다이내믹하게 갔으면 좋겠다. 너무 순해버리면 안되지 않나." 김 원장이 추임새를 넣었다. 김 국장은 "전북일보 필진 구성은 보수와 진보가 섞여 있다"고 시인했다. 몇몇 위원들은 오피니언난의 '오목대' 소재가 가끔 엉뚱하고 만평의 스타일과 분위기가 구식으로 느껴진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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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 문제도 튀어나왔다. "그럼 (전주시) 동서학동은 신문 배달이 되는데 바로 옆 대성동은 당일 아침 배달이 안 된다는 겁니까?" 아침에 집으로 신문이 오지 않아 학교에서 전북일보를 구독한다는 대성동 거주 권 선생의 푸념에 최 처장이 발끈했다. 모두들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이제 남은 주제는 편집. 한달 전까지 편집부장을 지낸 김성중 정치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근 재탕 음식 관련기사 제목이 너무 감정적이다. 그 제목을 보면 모든 음식이 싫어진다. '네 자식 같으면 먹일 것인가'식의 카피는 지나치다. 완숙함과 은유적 표현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언어의 조탁을 통해 신문의 품격과 메시지 전달 능력을 높이라는 얘기다." 김 원장이 맥을 짚었다. 강인석 팀장은 "현장 취재였고 강렬한 제목이 순기능도 있다"고 반론했다. 화제를 돌려 권 선생이 "지방면이 많던 데 너무 산만해서 어지러워요. 간결하면서도 시선을 붙드는 편집을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이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예를 들면 일선 시군에서 무순 축제가 엉터리다. 이런 편집을 봤어요. 근데 기사를 읽어보니 무엇이 엉터리인지를 찾을 수 없었죠. 자기 생각, 또는 다른 사람의 생각만 듣고 쓴거겠죠. 이 기사를 편집하는 기자들이 팩트(사실)가 없는 기사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편집했다면 그 또한 큰 문제 아닌가요." 참 '무서운' 독자권익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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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이 흘렀다. 김 팀장이 지방지를 읽지 않는 도민들의 태도와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말해 달라고 했다. "전북인들은 너무 중앙 뉴스 의존도가 높아요." "신문을 잘 만들고 그 다음 독자의 문제를 찾아야지요." "낙후와 빈곤 등 희망이 없는 지면에 식상해서 그럴 겁니다. 그래서인데 월요일자 '웃는 얼굴'은 참 신선합디다." "한번 물면 끝까지 파헤치는 전북일보를 보여주면 도민이 먼저 찾지 않을까요?" "독자를 무시하면서 가르치려들지 말되, 기자는 치열하게 실력을 쌓으세요." "공식적인 독자권익위원회의 보다는 이런 자리를 통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사장님께 건의해주시죠." "저번에 보니 특종 기사를 내보내고도 다음 날 뱀꼬리처럼 지면에서 슬며시 자취를 감추던데 혹시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건 아닌가요?" 작심한 듯 독자권익위원들은 속내를 털어놨다.
누군가 "벌써 열시 반이네"라고 했다. 좀처럼 일어나기 싫은 표정을 짓던 위원들이 하나 둘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기 시작했다. 작별 악수에는 아직도 못다한 말이 많다는 듯 '힘'이 느껴졌다. 막걸리집 골목길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전북일보가 나아갈 길이 유성처럼 빛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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