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성(전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어느 날,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 아이를 만났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같은 라인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주로 만나는 공간이기에 간단한 인사정도는 오고가는 곳이다.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넨 후, 몇 마디 말을 걸기 시작했다. "몇 층에 사니?, 너 이름이 뭐니?" 그 아이는 대답이 없다. "몇 학년이니?, 그럼 몇 살이야?" 여전히 대답이 없다. "너 ○○초등학교 다니는 거 맞지?". 그 아이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그만 11층에서 내려버렸다.
이 때 "아빠하고 함께 다니는 것이 너무 창피해!" 옆에 있던 중학생 딸아이가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지며 나에게 핀잔을 준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그 아이를 난처하게 만드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딸아이에게 "아빠가 무섭게 생겼니?"라고 한마디 건네며 나도 모르게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혹시 내가 불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 아닐까? 그 아이는 정말 창피해서 내말에 한마디 대꾸도 안했던 것일까?
부모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그리고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대개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대꾸도 하지 말고, 누가 뭐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 것이며, 공짜로 차를 태워준다고 해도 절대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몇 번을 주지시킨다. 하기야 세상이 하도 무서워서 이렇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교육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아이의 행동 또한 당연했고 심지어 칭찬받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배운 대로 실천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것이 미리 경각심을 갖게 해주기 위한 어른들의 지혜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며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과 학교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각심 강화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도 되돌아 볼 일이다.
안면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한마디 대꾸조차 안하는, 아니 일부러 피하는 아이로 키우게 된다면 우리 세상은 어떻게 될까? 왜 그 아이가 "내 이름은 ○○○"이라고, "나는 ○○초등학교 몇 학년"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게 만드는가? 이것이 정말 바른 교육일까?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교육이 사회를 바꾸고 또 사회적 현상은 교육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어른들의 삶은 아이들의 거울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는 사회 안에서 그들은 어른들을 모방하고 학습하며 그렇게 닮아가며 커간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사회, 무서운 세상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는 사회가 교육을 통해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기본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삶에서 배우고, 배운 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 추구하는 본래의 목적이기도 하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이와 만나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호기심 많은 눈으로 그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묻기를 기대해 본다. "아저씨는 몇 층 사세요?", "아저씨 이름은 뭐에요?" 라고…이런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천호성(전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 천호성 교수는 전북대 사회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 일본교육학회 편집위원장·전북다문화교육센터 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