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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이상한 연주회 - 이종민

이종민(전북대 영문학과 교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이번 중국 여자12악방의 공연에서도 이 진리는 확인되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와 소통하다!" 적어도 이번 공연을 보고 이 구호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공연 방식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라이브공연의 장기를 거의 살리지 못했다. 노래도 아니고 악기 연주에 왜 그렇게 강한 녹음반주를,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13명의 미녀들이 보여준 무대 매너나 연주 역량은 훌륭했다.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자신감 넘치게 연주하는 모습은 눈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귀는 매우 따분했다. 모든 곡에서 그 매혹적인 연주음들이 소란스럽고 단조로운 타악 녹음반주에 묻혀버려 감동하기 위해 준비된 마음마저 겸연쩍게 만들어 버렸다. 둔탁한 타악전자음 때문에 해금보다 부드러운 얼후 특유의 음색도, 청아한 비파의 맑게 통통 튀는 소리도, 가을에 어울리는 대금 닮은 중국 관악기 특유의 연주음도 구분해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두시엔친'이란 독특한 악기의 연주마저도 녹음반주가 범벅으로 만들어 버려 뭣 때문에 독주무대 차비하느라 애를 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으로 공연을 끌고 갈 수 있는가? 이들 공연이 항상 이런 형태였는지 확인할 수 없어 화만 낼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항상 그랬다면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 연주단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가 납득이 안가고 이번에만 그랬다면 그것은 분명 모욕적인 일이다. 청중의 수준을 너무 무시한 연출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국 음악의 독특한 면을, 연주악기 말고는 거의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도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이 부분은 취향과 관계된 것이어 조심스럽지만, 어떻게 조금 느리고 차분하게 시작되었다가 하나같이 소란스러운 락 음악 형태로 수렴되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중성, 그 소박한 (조금은 천박한) 낙관적 낭만성을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을 그렇게 하고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단 말인가?

 

이번 공연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역시 퓨전도 진정성을 갖추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 어설픈 섞음으로는 감동을 견인할 수 없다는 것 등을 생생하게 확인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날 게스트로 참여한 소리아(Sorea)의 공연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각인시켜주었다. 보컬이 있어 라이브의 생동감을 잘 살릴 수 있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국적 불문의 리듬과 선율은 '국악퓨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 음악과는 애초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악기도 액세서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묘하게 흔들며 연주하는 모습은 한국 음악에 대한 부정적 인상만 심어줄 것 같아 심히 안타까웠다.

 

이 날 공연의 백미는 '산인밴드'의 신선한 연주라 할 것이다. 이들 연주가 없었다면 공연장 찾은 것 자체를 후회할 뻔 했다. 녹음반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소리아의 반대편에 서서 연주공연의 진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음악의 대중화와 세계화, 그 해법을 찾겠다며 단체관람을 한 도립국악원 단원들은 과연 무엇을 느끼고 돌아갔을까? 청중들 감수성의 섣부른 하향평준화로는 대중화도 세계화도 꾀할 수 없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을까? 자신감 넘치는 무대매너와 뛰어난 연주실력, 녹음반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돋보인 [신고전주의] 등이 보여준 과감하고 신선한 편곡 등, 분명 여자12악방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긍정의 요소들도 확인하고 돌아갔을까? 진정 그랬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진정성과 독창성을 함께 갖춘 국악퓨전 곡과 역량을 갖춘 연주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아쉬움이 아쉬움만으로 그치지 않을 터이니.

 

/이종민(전북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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