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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역사 이야기] ⑥코미디

고려중기부터 어릿광대 재담…과장된 몸짓·억지 웃음보다 수준 높고 감각적 선호

<< 1960년대말부터 시작된 TV코미디 프로그램과 함께 세인들에게 웃음 폭탄을 안겨주었던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씨의 별세는 한국 코미디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MBC와 TBC가 납치극을 벌이며 자신들의 프로그램 출연을 갈망했을 정도의 인기를 누린 고 배삼룡씨는 대중 코미디의 막을 열었고, 특히 그는 대중 코미디 1세대의 한복판에 서있었다. 그런 만큼 그의 죽음은 현대 코미디 역사가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근대와 현대를 중심으로 코미디와 개그의 역사를 짚어본다. >>

 

▲ 악극단 버전 코미디

 

우리나라에서 코미디가 체계적으로 태동된 시기는 고려중기. 당시 어릿광대들이 재담을 통해 웃음을 선사했다. 조선과 근대엔 사당패(남사당패 여사당패)들이 해학적인 희극으로 민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1960년대에는 악극단들이 그 맥을 이었다. 고 배삼룡씨를 비롯 초기 코미디 대중 스타들은 대부분 악극단 출신들이다.

 

대중 코미디 1세대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씨의 별세는 현대 코미디 역사가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desk@jjan.kr)

 

대중매체인 라디오와 TV가 상용화 되면서 코미디도 각 매체에 맞는 변형을 통해 점차 대중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소리만을 전달할 수 있는 라디오는 만담류가 득세했고, 1960년대 TV시대가 열리면서 코미디는 쇼 프로그램 속에서 단막 형식으로 선보였다.

 

코미디가 대중화의 대로를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때는 MBC-TV가 1969년 개국과 함께'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제목으로 코미디를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면서부터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코너의 형식이 오랫동안 코미디의 교본을 이루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오른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들은 자신들 전공인 무대극 형식의 코미디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초기 한국 코미디는 '무대극 버전'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나타냈다.

 

1970년대에는 구봉서·배삼룡·서영춘씨로 구성된 트로이카 시대가 활짝 열렸다. 구봉서는 상황연기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배삼룡은 개다리춤과 바보 연기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서영춘은 속도감 넘치는 애드립으로 무장했다. 또 장소팔과 고춘자씨는 기관총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말솜씨의 새로운 경지를 선사했다.

 

무대극 버전의 코미디는 오버액션과 바보 캐릭터와 맞닿으면서, '저질'시비를 낳았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이같은 논란에 휩싸이자 정부는 1975년 저질 코미디 방송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까지 검토한데 이어, 1978년 코미디 전폐령이 나오면서 실제로 보름 동안 방송에서 코미디가 사라지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까지 '코미디 극장''일요일이다, 코미디 출동''고전 유모어 극장'등 프로그램을 통해 코미디언의 유명세와 명맥은 계속되었다.

 

▲ 개그의 등장과 코미디의 쇠락

 

개그는 악극단 형식의 코미디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초·중반에 처음 등장한 개그는 당시 대학가에 산재한 생맥주 클럽과 통키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재야 입담꾼들이 주도 세력이었다. TBC방송이 '살짜기 웃어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소개하면서 개그 분야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40대와 50대엔 익숙한 '참새 시리즈' 등 유머가 이 시기에 생산되었다.

 

1980년대 들어 개그가 코미디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달으면서 양측간 갈등과 대립이 빚어졌다. 선배들 진영인 코미디언들은 '개그맨들은 아이들끼리 벌이는 학예회 수준'이라고 비난했고, 후배들로 구성된 개그맨들은 '코미디언은 창의성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대중들은 개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1980년대 중반 무렵에 개그맨들이 코미디를 누르는 역전사태가 빚어졌고, 당시 유명 프로그램들인 '유머 일번지''청춘 만만세''일요일 일요일 밤에'등이 개그맨들의 손에 속속 들어왔다.

 

개그의 역전현상은 시대적인 산물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속도를 내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면서, 국민들은 과장된 몸짓과 억지 웃음을 주무기로 한 코미디 보다 감각적이고 재치 넘치는 개그에 대한 선호현상을 보였다. 의식의 도시화이다.

 

1990년대 들어서도 개그 강세는 이어졌고, 일반인들도 코미디언이라는 용어보다 개그맨이란 용어를 친숙하게 대했고, 현재 방영되는'개그 콘서트'가 그 위세를 반영한다.

 

▲ 공개방송 형식의 개그 프로그램

 

1960년대 무대극 형식으로 시작된 코미디는 이제 공개방송 형식으로 변모했다. 서울 대학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연 형식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개방송 형식은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에겐 살벌한 시험 과정이다. 각 프로그램의 반응도는 수많은 관중들을 통해 현장에서 즉각 즉각 검증되면서 출연자들의 합격-불합격이 곧 바로 판가름 난다.

 

공개방송이 일상화 되면서 개그의 수준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초기 개그는 말장난 수준에서 맴돌았지만, 이젠 관객보다 한 박자 앞서가는 사고를 가져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코미디와 개그계의 단골 메뉴인'바보 캐릭터'의 흔적은 지금도 찾을 수 있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유교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점잖아야 한다는 가슴 속 깊은 강박 관념이 바보 연기를 통해 대리만족과 해방감을 느끼는 과정 말이다.

 

▲ 코미디와 개그 차이

 

먼저 밝혀둘 사항은 이 기사에서 사용된 코미디라는 용어는 우리말로는 희극이라고 번역되지만, 세익스피어가 사용한 희곡과는 달리 문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대중적인 의미라는 점이다.

 

개그는 코미디와 차별화하기 위해 등장했다. 개그는 전유성씨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그는 사전적으로는 관객을 웃기기 위해 끼워 넣는 즉흥적인 대사나 우스갯짓이란 의미를 갖는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현상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개그는 주로 대사 위주로 웃긴다면, 코미디는 행위 위주로 웃긴다. 배삼룡의 코미디와 전유성의 개그를 떠올리면 대충 경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같은 구별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적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몸짓으로 웃기는 연기에 대해 개그라는 이름을 붙인다. 행위 연기가 풍부한 채플린에 대해서도 개그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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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모 kimk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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