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천주교 전주교구 천호성지)
언젠가부터 성묘를 다녀올 때 마다 선산을 오르는 길 여기저기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덤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대로 조상들을 모셔온 선산에는 이제 묘지 쓸 무덤자리 조차 비좁다. 산이란 산마다 양지바르고 나무가 잘 자랄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있는 무덤들을 보며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묘지강산이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한해 분묘로 잠식되는 토지가 여의도 면적(8.4㎢)의 57%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1인당 평균 주거공간이 4.3평임에 비해 묘지는 평균 15평에 달해 죽은 자의 공간이 산 사람의 주거공간보다 3~4배나 더 큰 것이 현실이다. 가족제도가 변화하면서 2, 3대만 지나면 조상들의 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토지만 점유한 채 연고자 없이 버려진 분묘가 전체 묘지의 40%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회의 장묘문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깊은 의식수준을 드러낸다. 산을 헐어서라도 묘지를 꾸며 집안의 출세를 과시하고 험준한 산꼭대기에 명당을 잡아서라도 자손번영을 추구하는 우리의 문화는 아직도 원시시대의 의식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름다운 산을 파헤치고 보란 듯이 자리 잡은 호화묘지와 산골짝에 버려진 무덤은 아직도 우리가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허약한 자기과시와 탐욕스런 자화상이 아닐까?
얼마 전에 중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세계인구의 20%가 사는 나라에 그 어디에서도 봉분묘지들을 볼 수 없었다. 사실은 풍수지리 사상의 원조인 중국도 모택동이 혁명을 완수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나라 전체가 "거대한 묘지"라고 불릴 정도로 어디를 가나 묘지가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연간 평균 사망자수가 6백만명에 달해 매년 엄청난 규모의 땅이 무덤자리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모택동이 이끄는 혁명정부가 1956년 화장을 법으로 정하고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하는 토장제도를 금지시키는 "장묘문화혁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전국 어디에서나 봉분을 한 무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1백배나 넓은 땅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40년전부터 "장묘문화혁명"을 시작해 오늘에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화장률은 100%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같은 문화권으로 장묘제도도 비슷했던 중국이 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지도층의 솔선수범에 힘입어 심각했던 묘지문제를 해결한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발표된 공식통계는 우리의 장묘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라북도 통계에 따르면 화장 장려 초기인 지난 2000년 화장률은 18.5%로 미미했으나, 2004년 들어 34%, 2006년에는 42.8%로 해마다 증가했고 2010년에는 화장율이 60%에 이를 것으로 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며 후손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사후관리에도 안정적인 새로운 장묘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어 간다니 늦은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추석은 산이와 죽은이들이 함께 누리는 명절이다. 고향을 찾는 마음과 생명의 근본을 찾아 성묘를 다녀오는 정성이 만들어내는 풍요로움을 나누는 축제이다. 산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 허약한 육신을 넘어서는 고귀한 의식으로 삶을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하여, 올 추석에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성숙한 장묘문화를 모색해보는 시간도 한자리 마련되기를 바래본다.
/ 김영수(천주교 전주교구 천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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