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 (전북대 교수)
2010년 10월 10일 황장엽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사망했다. 그는 김일성 대학 총장을 10년간 역임하고 김일성 독재를 뒷받침한 '주체사상의 대부'였다. 북한 로동당 국제담당비서로 북한의 권력서열 13위까지 올랐던 인물로 북한정권의 이데올로그였다. 그러나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97년 "조국(북한)의 체제에 의분을 느껴 그 변혁을 도모하기"위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런 그가 사망하자 정부는 국민훈장 중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수여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을 장례위원장으로 한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국립현충원에 안장시켰다. 장례식장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나라당 의원들과 정, 관계의 수많은 인사 등 우리사회의 수구 보수인사들이 참석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주체사상을 창시하여 독재 정권의 기틀을 마련한 점과 북한의 인권 악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단지 남한으로 넘어와서 김정일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현충원에 안장될 수는 없다며 현충원 안장에 대해 반대하고 장례식에 불참했다. 보수일간지인 뉴스타운에서는 "김정일을 비방한 것이 업적이라면 이 나라에는 황장엽보다 더 열심히 김정일을 욕한 애국자들이 많다"며 반대했다. 또 보수 수구인사중 하나인 지만원은 "황장엽이 김정일과 관계가 악화되자 남한을 피신처로 이용한 사람이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황장엽은 귀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고 망명자 신분을 고집해 왔던 사람이다"라며 반대했다.
현충원이 어떤 곳인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그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사후에 편히 영면할 수 있도록 안장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귀한 뜻을 지켜나가기 위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현재 현충원에는 한국전쟁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국경일이나 국가의 중요행사가 있을때 애국가를 부르고 또 국가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할 때 이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 황장엽 비서가 함께 안장되어 있는 것이다. 6·25 한국전쟁에서 직접 참전은 않았지만 김일성 체제의 버팀목이었던 주체사상의 대부로 1997년까지 북한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었다.
일본 동경의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일본판 국립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2차 대전의 전쟁범죄자로 교수형을 받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 7명이 함께 안치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정치인을 비난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이 안치된 곳에 참배한다는 것은 그 전쟁에 대한 반성이 없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현충원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그 체제를 유지시켜온 인물을 안장시켰다. 정말 뭐가 뭔지 헷갈린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탈북한 주요 인물에게 우리의 국가이익을 위해 일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변절자인 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현충원에 안장시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이 되게 하는 것은 후세들의 교육에도 좋지 않다.
우리는 기울어가는 고려왕조를 끝까지 지키려한 정몽주나 왕위찬탈에 저항한 성삼문, 박팽년에게 박수와 영예를 보내고 사표로 삼지만 이방원이나 한명회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것은 그 시대에 국한된 것이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위해 변절했던 신숙주에게 세조는 부귀영화를 주었지만 백성들은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역사다.
/ 송기도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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