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 (전북대 교수)
2010년 경인년도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최근 우리나라 역사에서 호랑이해에 국가적 재난이 유독 많았다. 100년 전 1910년에는 경술국치를 당해 일본에 나라를 뺐겼으며, 60년 전 1950년에는 6·25전쟁으로 남북의 산하가 산산히 찢겨 폐허가 됐었다. 그리고 금년은 천안함 피폭침몰과 연평도 폭격으로 남북간 긴장이 휴전 후 최고조에 달했다. 국내적으로는 4대강 사업과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로 여야간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진과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장면을 '2010년 올해의 사진'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최근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싸우는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싸우는 이유보다 싸운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왜 싸우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자세히 알기보다, 싸우는 사람 모두 나쁘다는 전형적인 양비론이 또다시 판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누리꾼들이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 왔는데 정치 수준이나 국민의식은 아직도 후진국에서 못 벗어나고 있으니 국제 망신을 자초한 국회의원님들 좀 반성하셔", "몸싸움하시는 의원 나리들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귀하신 몸들이 WSJ의 올해 사진으로 올랐으니깐요. 뿌듯하겠습니다." 라며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있다.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통치자 마음대로 국회의원을 임명하다시피 했던 경험 때문인지, 심지어 힘센 사람들이 하는 것이 좋다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각자 서로 다른 것을,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절충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는 소위 선진국들을 보면 오랜 기간에 걸쳐서 기술도 발전시키고 전통도 세워놓았다. '정치'는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줄때 '좋은 정치'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에 명기되어 있는 것처럼 '주권자인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정치를 지켜봐야한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TV 드라마 '대물' 마지막회에서 서혜림(고현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퇴임 후 고향 마을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 썩었다고 매일 싸움질만 하고 똑같다고 외면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싸우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속에서 어떤 것이 우리를 위하는 것인지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한사람의 시민으로, 한 아이의 엄마로, 이웃 아줌마로 돌아가겠습니다. 정치인은 미워하더라도 정치는 버려서는 안됩니다. 정치를 사랑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동해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가져가지 위한 별주부의 유혹은 우리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별주부는 토끼에게 엄동설한의 추위, 배고픔, 덫, 사냥꾼, 사냥개 등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육지를 떠나 천여 칸의 집, 온갖 진귀한 보물, 천하에 없는 진미, 여색과 풍류로 태평성세인 수궁으로 가자고 꼬드긴다. 하지만 수궁에서 세속적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 토끼의 꿈은 결국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다. 토끼에게 허용된 현실적인 삶의 공간은 바다 속이 아니라 결국 육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꿈에서 깨어나야 할 때다.
2011년 신묘년(辛卯年) 토끼해에는 모든 것이 잘 되길 기원해본다. 허황된 욕심을 부리다 자라에게 속아 동해 바닷 속에 끌려갔다 재치로 살아나온 토끼처럼 최근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풀어줄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래본다.
/ 송기도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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