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영 (전주 예수병원장)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바다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바닷가에서 살면서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점점 익숙해져서 이제는 무관심한 까닭이다. 매일처럼 보는 파도와 갈매기는 더 이상 흥미가 없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바다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도 바닷가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해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풍요가 넘치는 일상의 삶과 행복한 내일이 당연한 것일까? 하지만 우리에게 오늘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며 어제가 그냥 내일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은 이전 세대의 성취와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의 나 또한 한 호흡으로 숨을 쉬는 공동체의 이웃들과 우리로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지구촌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의무,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구성원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한 배려에 대한 성찰과 나눔의 실천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나눔의 제도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경험했던 경제 제도 중에서 총량적인 면에서 가장 신속하게 부의 생산과 축적을 가능케 한 제도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와 전통의 희생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했다. 치열한 경쟁사회일수록 공동체 유대와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치 않으며 사회적 약자는 고립된다. 세계화된 시장경제에서 소비는 증가하지만 갈등은 확대된다. 이제 경제적 성과가 사회 전반적인 삶의 개선으로 연결되는 제도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의 부차적 요소로 간주되던 사회적 책임이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새 기준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일찍이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에서 앞장서 싸움으로써 지위에 맞는 책무를 다했으며 부의 사회 환원을 명예로 여겼다. 세계 최고의 재벌인 동시에 최고의 자선가 록펠러는 74세에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해 기부를 통한 나눔의 영원한 아이콘이 됐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받던 1969년, 예수병원 설대위 박사는 친구에게 "암으로 생의 마지막 몇 달을 투병하면서도 예수병원의 수술실 건축 비용을 담당해 모금에 앞장 선 플로리다주의 어느 장로를 잊을 수 없다"고 편지를 썼다. 1971년에 완공된 예수병원 건물의 건축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미국, 독일의 수십만명의 후원으로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이 마침내 용머리 고개의 기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이 가족처럼 의지하며 살았다. 모내기철에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품을 교환하는 품앗이와 마을의 큰일을 위해 조직된 두레가 있었다.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돕는 마을의 약속, 향약도 있었다. 지금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나눔의 DNA가 남아 있다.
시대와 나라는 달라도 이웃사랑의 배려와 나눔의 가치는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생명의 단비와 같아서 동일한 희망을 노래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시가 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느 누구에게 뜨거운 가슴이었는가?
우리가 사는 평범한 일상의 바다는 오늘도 장엄하게 일렁거린다. 그 파도 속에서 솟아오르는 경이로운 해돋이와 황홀한 금빛으로 물든 석양의 노을이 있다. 하루 하루가 감사이며 매일 매일 또한 감격이다.
/ 권창영 (전주 예수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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