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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전자소송 시대의 개막

고영한 (전주지방법원장)

 

금년 5월부터 민사소송 분야에서 전자소송이 시작되었다. 전자소송이란, 당사자가 소장 등의 소송서류를 전자파일로 제출하고, 이메일 등으로 전자송달이 이루어지며, 법원은 기록을 전자적으로 관리하여 법원과 당사자가 전자적으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디지털시대에 걸맞는 소송진행 방식이라 말할 수 있다.

 

법원은 그동안 사법정보화의 영역에서도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미 판례, 법령 등의 데이터베이스화를 마쳤고, 사법부 업무 전반의 각종 프로세스를 웹 기반으로 표준화하였으며,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종합 포털사이트를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이러한 기반위에 법정 중심의 재판을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도 완성된 형태인 전자소송이 드디어 그 막을 올린 것이다. 가히 우리 사법 역사상 큰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종전에는 국민들이 소송을 제기하여 소장 등 각종 서류를 제출하려면 법원을 방문해야 했다. 소송비용도 우체국 또는 은행을 방문하여 납부한 후, 확인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소송기록을 보려면 법원을 방문하여 기록 열람 신청을 하여야 했고, 집에 가서 검토하려면 필요한 부분을 복사해야만 했다.

 

법원에서도 제출된 소송서류를 상대방에게 보내거나 변론기일 통지서를 송달할 때에는 우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매 사건의 서류가 제출될 때마다 편철작업을 거쳐 종이기록을 만들었다. 판사들도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기록을 넘겨가면서 사건을 검토했다. 사건에 관하여 합의를 할 때에는, 두꺼운 소송기록을 탁자에 쌓아 놓고 필요한 부분을 확인해 가면서 토론을 했다. 재판 때에도 법대 위에 방대한 소송기록을 올려놓고 서류더미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법정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자소송 시대에는 이 모든 것들이 더 편리한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당사자는 소송서류를 인터넷으로 접수할 수 있고, 그 즉시 접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소송비용도 계좌이체나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있다. 모든 서류가 이메일로 실시간 전송되므로 우편배달에 걸린 시간만큼 재판기간이 단축된다. 종이기록은 사라지고, 이제 모든 기록은 전자파일로 법원 서버에 저장된다. 기록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자기 재판에 의문난 점이 생각나서 기록을 확인하고 싶다면 인터넷에 접속하면 된다. 법원에 가서 기록 복사를 해 올 필요 없이 집에서도 얼마든지 해당부분을 출력할 수 있다. 국민들의 편익이 그만큼 증가한다.

 

판사실의 풍속도도 바뀌었다. 종이기록 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사건에 관한 합의를 한다. 법정에서 재판을 할 때도 법대에 쌓아 놓은 기록들은 모두 없어지고, 모든 기록의 내용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법정에 비치된 스크린에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전자소송은 모든 국민들에게 항상 열려 있다. 대법원 전자소송사이트(http://ecfs.scourt.go.kr)에 회원가입을 하고 공인인증서를 등록하기만 하면 누구나 전자소송으로 사건을 접수할 수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는 1만 건 이상이 전자소송으로 접수되었고, 전라북도에서만도 현재까지 270여 건의 전자소송이 접수되어 진행되고 있다. 전자소송의 인지대를 종이소송보다 10% 할인하여 주는 내용이 담긴 법률이 지난 달 29일 국회를 통과했으므로, 조만간 그 법률이 공포 시행되면 앞으로 전자소송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난 6월 중순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에 참석한 30여개국 대법원장들은 우리나라의 전자소송 시스템에 대해서 모두 감탄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것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법원에서까지 전자소송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일부 전자소송을 시행하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기록을 전자파일로 만들어 보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체 개발한 전자소송시스템은, 위와 같이 실시간으로 재판의 진행 과정을 확인하고 기록을 열람할 수 있으며, 의견을 즉각 제시할 수 있으므로, 그 경쟁력에 있어 확실한 우위를 점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 전자소송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대법원에 사법정보화 관련 공동회의, 세미나 개최, 양해각서 체결 등을 통한 협력관계를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력한 결과 정보통신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의 사법제도도 뒤늦게 외국으로부터 도입되어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만든 새로운 전자소송 시스템을 세계에 수출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사법정보화의 영역에서도 또 하나의 한류(韓流) 실현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자소송 실시를 계기로 우리 사법의 모델이 세계 사법을 선도하는 시대가 오기를 염원해 본다.

 

*고영한 전주지방법원장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 21회 사법시험(연수원 11기)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지법 부장판사·법원행정처 건설국장·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현재 전라북도 선거관리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고영한 (전주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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