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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절차의 정당성 (Due Process)

강철규 (우석대 총장)

 

 

오래전 저명한 헌법학자가 미국의 헌법정신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내 생각에는 '정의'나 '자유', 혹은 '평등' '평화' 등의 고상한 가치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절차의 정당성(Due Process)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같이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성과 우선주의 사고에 젖어 있는 경우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절차와 결과 중 무엇을 더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의 차이인데 그 의미와 파장은 매우 크다. 결과가 무엇이되든 그 과정이 정당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와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과만 좋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의 차이이다.

 

개발연대부터 우리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높은 성장률을 이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성장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왔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잘못이 있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덮고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정부정책에서 기업경영에서 그리고 모든 조직의 행정에서 그러한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오늘날도 그러한 전통이 남아있다.

 

성장률만 높으면 그것은 정치를 잘 한 것이고 그것이 훌륭한 대통령의 조건이고 기업은 훈장을 받는다. 그것이 양극화를 심화시켜 저소득층의 고통을 수반하였는지, 물가를 폭등시켜 서민생활을 어렵게 하였는지 혹은 국가와 공공기업 그리고 기업과 개인의 부채를 얼마나 증가시켰는지는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그나마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곧잘 비판적 논의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결과가 좋은 경우 잘못된 점이 확실히 발견되었어도 그 과정을 덮어두는 일이 자주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 과정에서 사람의 생명이나 개개인의 자유 그리고 공동체의 신뢰가 손상되어도 이를 가볍게 여긴다. 용산 참사와 같이 재개발을 조속히 성사시키기 위하여 주민 중 일부가 희생되는 일도 감수한다. 이러한 것들은 미국 헌법정신의 기반인 절차의 정당성에 비추어 보면 절대로 용납이 되지 않는 일들이다.

 

가치관은 사람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파나 이익집단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는 절차의 정당성은 언제나 지켜져야 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모든 정파나 이익집단이나 개인이 쉽게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법원의 판결은 항상 절차의 정당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판결결과가 정의로웠는가 여부는 그다음의 문제가 된다. 절차가 정당하였다면 판사의 최종판결 내용이 내 의견과 다르다거나 상식에 어긋난다 하여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만큼 절차의 정당성을 존중하는 것이 미국이다.

 

수많은 갈등과 오해도 대부분 절차의 정당성이 결여된 데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많은 과거사 평가도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한 채 성과만 가지고 평가할 때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 아무개 아무개 대통령이 5천년 역사동안 최고였는데 그 이유는 이러이러한 성과를 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되기 위해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고 그러한 일들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요즈음 공기업이나 준공기업이라 할 수 있는 금융기관 등의 부실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전문성과 무관한 낙하산 인사가 그 원인의 하나라는 분석이다. 그것이 맞다면 이 역시 선발절차의 정당성이 결여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법정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모두 갈아치우는 것도 철저하게 인사절차를 무시한 처사이다. 절차의 정당성이 결여되면 일단 갈등과 비리 그리고 기관의 몰락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갈등을 일으키는 많은 경우가 이같이 절차의 정당성이 무시된데 기인한다. 따라서 절차의 정당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 갈등해소의 지름길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협력과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도 역시 절차의 정당성을 높이는 데서 시작된다. 절차법을 정교하게 만들고 이를 잘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민주주의도 절차의 정당성(Due Process)을 높이는 중요한 사회적 기술의 하나이다.

 

/ 강철규 (우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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