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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제의 도

▲ 이상선 변호사

공자께서는 논어에서 "15세를 지학(志學 - 학문에 뜻을 둔다.), 30세를 이립(而立 - 인생을 세운다.), 40세를 불혹(不惑 - 미혹되지 않는다.), 50세를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뜻을 안다.), 60세를 이순(耳順 - 귀가 순리대로 들린다.), 70세를 종심(從心 - 마음이 가는데로 행동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나도 내년이면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되니 요즘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구시대 인물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인 1970년대를 회상해 본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 선생님이 가져오신 카메라로 졸업사진을 찍었던 추억, 학교를 결석한 학생이 있으면 10리 길을 마다않고 가정방문하시던 선생님의 모습, 동화책 한권 사서 읽은 처지가 아니었던 학생들에게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구전동화나 위인전기가 최고의 인기였던 기억, 칠판에 자신이 살아갈 인생의 좌우명을 새기도록 하여 큰 생각없이 적었다고 여겼던 '남과 적이 되지 말자'가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된 사실 등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그런 학창시절의 가르침을 꿈으로 키우고 노력한 결과가 아니었나 되새겨 본다.

 

그렇기에 요즈음 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 즉, 국가(봉건주의시대 임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가로 볼 수 있을 것임)와 스승과 부모는 큰 은혜로운 존재이니 섬김을 다하여야 한다]라고 하면 현실에 맞지 않는 옛 경구로 치부되겠지만, 필자가 성장할 때에는 스승님의 존재가 나를 만드는 초석이었기에 납득되는 이야기였음에 틀림없다.

 

이처럼 성장기를 책임져 주시는 선생님의 존재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변화된 게 없다. 문제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경제논리가 교육계에도 침투되어 학생들의 성적으로 선생님이 평가받는 시대가 되다보니 사제간의 끈끈한 정을 느껴보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미래의 꿈나무를 길러내시는 임무를 천직으로 여기며 생활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아직도 우리나라의 교육은 희망이 있어 보인다.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한다든지,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든지, 선생님이 혹여 체벌로 곤혹을 치를 수 있다는 생각에 훈계하기가 두렵다는 등의 기사를 접하면서 필자의 학창시절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라고 상념 해 본다. 변해도 너무 변했고 잘못된 방향으로 변했다. 이는 모조리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학생을 둔 가정이 많다보니 가정이나 사회생활중 교육과 관련한 대화가 자주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에 대한 대화내용이 긍정보다 부정적인 대화가 많은게 현실이다. 교육계의 극히 일부에 비리가 들어나면 그것이 교육계 전부의 비리인 양 흥분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자제되어야 할 사항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인격형성이 이루어지는 학창시절에 잘못된 언행이나 습관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손실은 우리나라가 입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창시절을 관리하는 선생님의 역할은 실로 지대하다. 그러기에 우리사회는 선생님들을 존경해 주어야 하고 천직이라는 소명감을 가지고 우리의 자녀를 바르게 교육시킬 수 있는 제도 즉, 토양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자, 이제부터라도 우리사회와 학생으로부터 선생님이 존경받는 풍토를 만드는데 서로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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