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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지혜

김계환 한국과총 전북지역연합회장

 
나무는 봄이 되면 새 잎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서 녹음을 이루고 있다가 가을에는 월동 준비를 한다. 겨울이 오면 탄소동화 작용을 하기가 쉽지 않으니 나뭇잎을 떨어뜨려 최소한의 식구들만을 거느리고 내년 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대학에 재직시 이 지역의 어느 군(郡)에서 침엽이 달린 가이쓰카 향나무 가지를 보내면서 혹시 이것이 가이쓰카 향나무와는 다른 변종이 아닌지 알려달라는 내용을 공문과 함께 보내온 적이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가이쓰카향나무와 다른 것이 아니었고 전년도에 전지를 하였던 바 이 나무는 평상시에는 인엽(비늘잎)을 달고 있지만 외부의 공격이 있을 경우 다음부터는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는 방어태세로 침형이 돋아난 것이다(나를 건드리면 이 침으로 찔러버릴 것이다라고 하는 일종의 엄포이리라). 아까시 나무의 경우 어린나무는 가시가 많이 달렸지만 큰 나무의 경우 가시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아마 어린나무는 외부의 공격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으로서 가시가 많이 필요하지만 큰 나무는 외부에서 함부로 공격하기가 쉽지 않으니 가시가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니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무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나무의 지혜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 중의 하나는 우리 인간이나 동·식물 모두가 종족보존 본능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종족보존의 차원만이 아니라 우수한 후손을 남기기 위하여 나무는 무한한 노력을 한다. 인간은 근친결혼을 하면 좋지 않은 후손이 태어나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설탕단풍나무나 노르웨이단풍나무는 동계교배(인간으로 말하면 근친결혼)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나무들은 자가수분을 하면 형질이 좋지 않은 후손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하여 같은 나무에서 암꽃과 숫꽃의 성숙시기가 다르다. 따라서 같은 나무의 암꽃과 숫꽃의 수정이 불가능하며 다른 나무와 수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이것은 동계교배를 피하고 다른 나무와 수정하여 우량형질을 가진 훌륭한 후손을 만들자는 것이다. 나무가 얼마나 훌륭하고 과학적인 지혜를 가졌는가? 놀라울 따름이다. 나무의 나이가 같고 생태적·환경적인 조건 모두가 동일한데 어떻게 암꽃과 숫꽃 자신이 꽃피는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과학적인 원리의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소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등은 대부분 암꽃이 나무의 위쪽에 달리고 화분(花粉, 꽃가루, 동물로 보면 정충)에 해당하는 숫꽃은 나무의 밑부분에 달려서 같은 나무끼리 수정(동계교배)을 억제하고 있다. 바람에 의해서만 수정이 가능한 이들은 화분이 아래로 내려가 다른 나무와의 수정은 쉽지만 위로 올라가서 같은 나무와의 수정은 어렵게 되어 동계교배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은행나무는 마주보아야 은행이 열린다고 말한다. 이말의 뜻은 암나무와 숫나무 사이에서의 숫나무의 화분이 암나무의 암술 머리에 닿을 수 있는, 즉 비산 거리내에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은행나무의 화분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보면 크기는 20~30마이크로미터(1mm의 30분의 1정도) 내외에 불과하며, 모양은 럭비공과 비슷하다. 왜 다른 나무 화분과 달리 럭비공 모양일까? 은행나무는 자웅이주인 바 숫나무에서 암나무까지 이동하여야만 수분이 가능하기 때문에 바람의 저항을 적게 받고 이동을 쉽게 함으로써 은행나무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무들은 이렇게 사려 깊은 통찰력과 미래를 준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 인간들은 과연 나무와 같은 사려 깊은 통찰력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지혜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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