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필자가 지난해 2월 약 보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일도 보고 여행도 하다가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고가 터졌다. 필자가 항시 갖고 다니는 수첩이 하나 있는데, 그 수첩에는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 연락처와 중요한 메모 등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걸 한 대형 주차장에서 그만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수첩을 다시 복구하기 위해 며칠을 낑낑대면서 연방 필자의 부주의만 자책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잃어버렸던 바로 그 수첩이 특급 국제우편을 통해 필자의 직장으로 배달된 것이다.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수첩을 열어보니 수첩에 끼여져 있던 사소한 내용물까지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수첩에 필자의 명함이 담겨져 있어 그걸 단서로 하여 돌려 보내준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걸 누가 보내주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체의 단서도 없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그 걸 주워서 국내도 아닌 외국에 까지 습득물을 포장까지 해가면서 보낼 생각을 하였을까?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영원한 숙제로 남겨진 채 필자는 그 이후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이름 모를 키다리 아저씨에게 감사의 빚을 졌다는 마음을 항시 담아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뢰사회가 아닐까?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두고 내린 물건을 다음날 찾아가라고 연락 오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약 40년 전 푸트남이라는 학자는 소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사회자본이란 쉽게 말하면 사회공동체 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것으로서, 도로나 전기, 수도시설 등 사회간접자본과 같이 같은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낯선 이웃에 대한 믿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사회자본, 즉 사회신뢰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필자가 지난 4월 초, 도내 모 방송사의 의뢰를 받아 전북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 인물이나 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인물이나 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100점 만점에 30점에서 50점대로 평가되었다. 한 마디로 아무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신뢰도가 가장 높은 인물은 교사로서 61.0점이었으며 의사(59.2), 교수(55.0), 시민단체(53.2), 공무원(51.9), 경찰(51.2),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신문(51.1) 등이 겨우 절반의 신뢰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KBS(49.3), 지역신문(47.9), 시장, 군수(47.8), 교육감(46.4), 법원(45.8), 종교인(44.7), 변호사(44.5), 도지사(43.7), 검찰(40.8), 도의원, 시의원(39.3), 대기업(38.7), 국회의원(34.6),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34.6) 등은 신뢰도가 낮았으며,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25.5점으로 가장 낮았다.
전반적으로 모든 인물이나 기관에 대한 신뢰점수가 낮았지만 특히 정치인과 권력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심각하게 낮은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결과를 지난 1992년, 1998년 조사결과와 비교해 보면, 그 동안 부정부패와 불신의 온상으로 인식되었던 경찰과 공무원에 대한 신뢰가 크게 회복된 것이 눈에 띈다. 경찰에 대한 신뢰도는 20년 전인 지난 1992년 39.2점, 1998년 43.3점, 올해 51.2점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상승하였다. 공무원 역시 지난 1998년 48.4점에서 올해 51.9점으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평가가 1998년 조사(당시 김대중 대통령)에 비해 가장 큰 폭(70.8→25.5)으로 떨어졌으며, 시대의 양심이라 불리는 종교인 (55.5 →44.7) 역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점이 주목된다.
최고로 신뢰받는 집단의 신뢰점수가 61점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50점도 안 되는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과연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회의 신뢰점수는 얼마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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