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성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하지만 과연 이들의 모든 기부 행위는 순수한 것일까. 기부를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부 행위를 통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기부에 어떤 식으로든 순수성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부를 단순히'누군가가 무언가를 다른 누구에게 주는 행위'가 아닌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적 줄다리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를테면 우월감과 열등감, 지배와 굴종, 승리와 패배 등의 의식이 폭넓게 작용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기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어 왔다. 프랑스 인류학을 개척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마르셀 모스(1872~1950)는 인간의 기부 행위를 분석하기 위해 고대사회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포틀래치' 의식에 주목했다. 이 의식은 한 부족이 그 구성원들 사이의 위계질서나 다른 부족들과의 관계에서 힘의 우위를 과시할 목적으로 소장품들을 주거나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기부는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은 자가 이에 응당한 답례를 하지 않으면 기부자에게 굴복하는 관계로 보았다. 또 기부 행위 역시 궁극적으로는 답례, 곧 대가를 전제로 하는 일종의 교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고 알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사실은 과거 서구 사회에서 귀족과 평민 사이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시작됐다. 중세의 귀족은 평민이나 노예 없이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경작하고 세금을 바치는 백성들에 대한 위신으로 귀족으로서 의무를 이행할 필요를 느꼈고, 전쟁이 나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가 싸웠다.
한편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인간의 모든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투쟁이 발생하지만 기부 행위가 이뤄지면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갈등과 경쟁이 아닌 평화와 협력으로 바뀐다고 주장했다. 순수한 기부행위를 통해서 현대 사회의 도덕 지수와 아름다움 지수를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했던 것이다.
기부자는 기부자대로 만족감과 행복감 혹은 수혜자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그런 감정을 수혜자에게 직접 전하지 않고, 또 수혜자는 수혜자대로 기부자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면서도 과도한 답례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부행위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르트르는 '익명의 기부 행위'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기부자는 무언가를 나눠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지만 받는 이에 대해 우월감이나 승리감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받는 이 또한 부채의식이 아닌 고마움과 사랑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를 통해서도 전주 노송동의 '얼굴없는 천사'를 비롯해 수많은 익명의 기부자들이 기부를 실천해 오고 있다. 사랑의열매가 기부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간접적이고 수평적으로 이어줌으로써 기부에 대한 비순수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주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최선의 행복을 주기 위함이다.'나'와'너'를 구별 짓는 선심성 기부가 아닌'우리, 공동체'에 대한 나눔문화의 정착이 우리사회의 아름다움 지수를 높이는 가장 순수한 방법이 아닐까.
※ 이 회장은 전주문화방송 보도국장·전주게임엑스포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금강방송(주) 대표이사·한국케이블TV 방송협회 호남지역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