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 홍보성 이벤트 아닌 진정한 의료봉사 활동은 국격을 높이는 민간외교
원광대병원장
원광대학교 병원과 캄보디아와는 오랜 그리고 가슴 아프면서 깊은 사연의 역사가 있다. 1997년 9월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떠났던 일행들이 프놈펜 공항에 착륙하면서 기체가 폭발해 일행이 전원 사망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의과대학과 캄보디아와는 더 깊은 유대를 이어왔다. 유일한 의과대학이었던 프놈펜 의대에 5층 높이의 기초의학 교육관인 '한-캄'우호관을 한국정부의 지원과 함께 지어주었다. 지금도 프놈펜 의대 교정에는 그때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재정 또는 의학서적 기증 등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프놈펜 의대 교수들의 연수 등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 캄보디아 시골지역인 바탐방에는 원불교 교당과 함께 구제 무료 시혜병원을 지어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으며 매년 원광대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의료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결코 일회의 홍보성 이벤트가 아닌 꾸준한 의료봉사 활동으로 지금껏 희생정신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이전에는 항상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 표 대결을 해왔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 남북한은 국가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상주 대사관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지원을 해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내의 조그만 내륙국가인 스와질랜드에도 1968년 남한 대사관이 설치했다. 그러다가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지자 남한은 너무나도 성급하게 1993년 스와질랜드 공관을 철수시키고 주남아공 대사관에 겸임 업무를 시키려 했다. 그러나 스와질랜드 정부는 바로 남한과는 단교 조치를 취하고 주남아공 대사관의 겸임업무를 못하게 해 국가적인 망신을 초래했다. 그 이후로도 남한 정부는 지속적으로 스와질랜드와 수교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2003년 7월 원광대 병원에서는 스와질랜드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필자 역시 참여했다. 그곳은 원광대 약대 교수였던 김혜심 교수가 원불교 교당을 설립하고 현지 한국의사와 함께 의료봉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정말 성심껏 현지 주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이러한 우리의 진심이 그곳 TV 방송에도 보도됐고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도 전달됐다. 떠나는 날에는 갑자기 스와질랜드 수상이 우리들을 불러 차를 대접하면서 선물로서 남한과의 외교관계를 회복시키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수교 회복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러자마자 주남아공 대사관의 관계자가 남아공 수도인 프리토리아에서 부랴부랴 찾아와 굉장히 놀라워했다. 그리고 귀국길의 경유지인 남아공의 한국 대사관저로 우리 일행을 전원 초대했다. 당시 한화길 주남아공 대사는 오랫동안 시도했던 수교 회복을 우리들이 성사했으며 본국에서도 오랜 숙원을 풀었다고 매우 기뻐한다고 전했다. 외무부에서도 우리들을 위해서 프랑스 파리 대사관저에서 한국음식을 그날 바로 공수해 즐거운 시간을 현지 관계자들과 함께 갖도록 지원했다.
가끔 해외 의료봉사 관련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그 곳의 종교적 문화적 환경과 잘 어울리는지 또는 이벤트성이 아닌지 염려될 때가 있다. 진정한 의미의 의료봉사는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민간 외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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