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10구단 실패 미래지향적 가치로 승화 / 패배의식 악순환 끊어야
행정통합 실패는 안타까움이 크다. 전주와 완주는 당초에 하나의 행정단위였다. 그것이 외적인 힘에 의해 분리됐고 지금까지 70년 세월이 지났다. 계속된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이번까지 3번의 실패가 이어지고 있다. 통합이 좌절되자 여기저기서 냉소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정치적 책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실패를 자조 섞인 푸념이나 상생사업 백지화로 되돌린다면 훗날 전주와 완주가 하나 될 수 있는 희망의 싹마저 뿌리 째 뽑아버리는 태도가 아닐까? 청주시, 청원군의 통합이 세 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 네 번째 성사된 것을 모르는가? 문제 해결의 열쇠는 힘있는 쪽의 태도와 진정성이 쥐고 있다. 이번 실패를 계기로 힘있는 전주가 완주의 장점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통합 파트너로서 받아들인다면 이번 실패는 속담처럼 성공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필자의 개인사로 잠시 시선을 돌려본다. 지금은 지도에서 조차 지명이 사라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1963년 내가 입학했던 운암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집에서 족히 십리가 넘는 거리로 7살짜리가 걸어서 등하교하기에는 멀다싶었지만 큰 비로 섶다리가 떠내려가고 징검다리에 물이 넘쳐 건널 수 없게 된 것을 빼고는 빠지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아마도 어린 것이 등굣길에 나서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부모님과 누나며 형이 칭찬을 많이 해준 덕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녔다.
이런 경험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봄방학이 시작되던 때 겨울 북풍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서 받은 우등상장을 손에 들고 오다가 상장이 바람에 날아가 논바닥에 떨어져 상장 글씨가 심하게 번져 어린 마음에도 속이 매우 상한 적도 있었다. 우등상장을 자랑삼아 책보자기에 싸지 않고 북풍에 손이 얼거나 말거나 들고 오다가 빚어진 사고였다. 돌이켜보면, 어린 것이 공부 잘한다는 긍정적인 피드백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천명의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무릇 사람이 하는 일은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가 성공의 모티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실패를 미래 지향적 가치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얼마만큼 쏟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바탕에서 칭찬과 긍정의 피드백이 되살아난다. 흔히들 한(韓)민족을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도 한다. 전북은 한민족 가운데 한이 가장 응어리진 곳으로 인식된다. 도세가 기울면서 홀대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패배감에 더 젖어들 수도 있다.
실패와 좌절이 안겨주는 패배의식의 악순환을 이제 끊어야 한다. 그 첫 작업은 실패를 새로운 시작의 디딤돌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다. 제 10구단의 실패는 제11구단 신설의 서막이며, 행정통합의 실패는 10년후 재도전의 기회다. 임진왜란 승리의 역사에는 수백 척의 왜선을 향해 '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今臣戰船尙有十二)'며 죽음으로 맞선 충무공이 있지 않았던가.
△ 양 총국장은 동국대 언론정보 대학원 석사를 거쳤다. 1985년 KBS 입사 후 KBS 다큐멘터리 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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