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도서관벽화 그려 명예군민증 받고 홍보대사 자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무래도 그는 이 동네 저 동네 유랑할 팔자인가 보다. 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가느다란 아트펜으로 그린 정교한 손 그림. 스스로 '비정규직 아티스트'라고 하지만, 지난 6월 '밤의 인문학' 출간은 물론 국민카드 광고에서 이효리가 형형색색 놀이동산 같은 뉴욕 거리를 걷는 마지막 장면, 배우의 얼굴 없이 일러스트로만 만들어 화제를 모은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의 포스터 등까지 그의 손을 거친 것이 정말 많다. 이 재밌는 간극은 선의로 시작한 디자인 기부가 되려 그를 마케팅해주게 된 사연에 기인한다.
일러스트 작가 '밥장'(43·본명 장석원). "밥 많이 먹어 '밥짱'이냐"라는 오해도 받지만, 영어 이름 '밥'(Bob)에 성(姓)인 '장'을 붙인 것이다. 전국구 작가가 전북과 인연을 맺은 건 2009년 완주 상관면 기찻길작은도서관의 벽화 그리기였다. 생애 첫 벽화 재능 나눔을 시작으로 작은 도서관 대여섯 곳과 지난 6월 완주둔산영어도서관까지 천진난만하고 개성있는 그의 디자인이 펼쳐졌다. '하기 싫은 공부'로 인식되는 '영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자 마법사가 영어를 뿌리면 손과 발이 튀어나오는 영어도서관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이런 노력 덕분에 완주군은 지난해 조례 개정까지 해가며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인 그에게 '명예군민증'까지 수여했고, 그 역시 "완주군이 하는 행사라면 언제든 달려간다"며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본래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0년 간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넥타이 부대'였다. 집안에 미술 정규 교육을 밟은 이도 없었고 그 역시 딱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2005년 홀로서기를 하면서 녹즙기·가스 스토브 등 집안의 소소한 것들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몇 번의 문전박대 끝에 그간의 연습노트를 모아낸 일러스트집'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 그림'이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첫 계기. 펜으로 꼬물꼬물 그린 듯한 그림이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원하는 기업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져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영등포점, 할리스 커피, KB국민카드 등과 일하며 매장 벽화와 광고 일러스트 등 다방면의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일약 인기 작가로 떠오른 그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스타 작가가 아닌 동네 스타가 되고 싶다"는 것. "디자인을 파는 '업자'가 아닌 작가로 남고 싶다"는 전제 이면엔 주민들과 소통하며 만들어내는 작업이야 말로 '진짜 의미있는 디자인'이 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완주 기찻길작은도서관에서 시작된 그의 재능 나눔 릴레이는 그가 살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 인근과 전국의 작은도서관, 시골동네 등 곳곳에서 100개를 목표로 이어가고 있다.
그의 오지랖 넓은 재능 나눔은 장소·시간에 갇히지도 않는다. 서울 홍대와 언저리 동네 이야기를 다룬 잡지'스트리트 H' 창간 4주년을 격려하고, 티셔츠 판매 등으로 얻은 수익을 남수단 사업을 위해 기부하며, 제주도 우도에서 지역아동센터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달려가는 등 전방위다.
피로감과 고단함에 젖어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밥장'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그냥 믿고 싶어지는 한줄기 단비 같을 수도 있다. 철없는 어른과 멋쟁이 어른 사이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그가 영원히 철들지 않길 잠시나마 희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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