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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골마을의 인심

세월호, 자본논리에 침몰 / 어린 학생들이 남긴 교훈 공동체 의식 회복 계기로

▲ 신명국 원광학원 이사장
얼마 전 지리산 자락을 지나다가 작은 산골 마을에 들렀다. 신록의 푸름과 함께 탁 트인 마을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이런 곳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경치에 취해 마을 입구에서 넋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을로 들어갔다.

 

20여 호가 울타리도 없이 살아가는 마을에 들어서니 마침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마당에서 고사리를 삶아 건지는 중이었다. 인사를 하고 마을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뭐 대접할 것이 없으니 이거라도…’ 하면서 커피를 내왔다. 평소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밤잠을 설치는 걸 감수하고 마실 수밖에 없었다. ‘혹시 퇴직 후에 들어와 살만한 집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는, 감자를 삶고 있으니 내려오다가 몇 개 드시고 가라고까지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온 국민이 애통함과 함께 분노마저 느끼고 있는 이 시기에 할머니는 내가 잊고 있었던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지리산 자락의 민박마을에서 자다 보면, 이른 아침에 민박집 주인이 와서 오늘은 동네 할아버지 생신이라며 등산객까지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이제 모든 민박마을에서는 농사보다 민박과 식당을 전업하는 가구가 늘어났고 외지인이 들어와 교묘한 상술로 토박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부터 옛 인심은 점차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앞의 할머니가 사시는 마을은 아직 민박이나 식당을 하는 집이 한집도 없는 마을이다. 동네 사람들은 열심히 농사지어 자녀교육 시키고 도시 사람 부러워하지 않고 살고 있다. 정월이면 함께 동제를 지내고 아직도 집안 어른의 생신과 제사 음식을 나누고 모르는 손님이 와도 먹을 걸 대접하는 그런 마을공동체 전통이 살아있는 동네다.

 

사실, 산골 마을 인심은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사오십 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제사가 끝나면 한밤중에 제사음식을 이웃에 나르는 일이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오랜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아직 생생하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짧은 기간에 산업사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 돈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세월호 참사가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원불교를 세운 대종사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을 ‘돈의 병’으로 진단하였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이 물질의 노예가 된 사회라고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 모순의 핵심을 언급한 이 주장은 사람보다 돈의 가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사회 전반의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모든 것이 시장주의에 내몰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제도로 바꾸라고 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명령이다. 이는 정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추동하고 감시해야 할 일이다. 이번 참사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버린 우리사회의 끝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을 중시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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